'사랑한다'는 말을 좋아하시나요. 일단, 저는 아닙니다. 세상에 사랑한다는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우신가요.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거리를 좀 두고 싶습니다. 1년 동안 지겹게 들은 말이거든요.
여러분은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시나요. 우리 집 꼬맹이는 '사랑한다'는 말의 도움을 받습니다. 참 좋은 말이지요. 하지만 길을 걸을 때도, 책을 읽다가도, 숙제를 하다가도, 공연을 보다가도, 대화 도중에도 튀어나오는 그 표현은 강박에 가까웠어요. 대답을 하지 않으면 대답을 할 때까지 이어졌죠. 제가 샤워하는 도중에도요.
6살부터 증상이 나타난 걸로 기억합니다. 처음에는 다독이고 안아줬어요. 평소에 애정표현이 적은 편은 아니거든요. 머리를 쓰다듬고 눈을 맞추고 뽀뽀도 합니다. 그런데도 무엇이 부족한지 아이는 같은 말을 반복하더라고요. 한날은 설거지를 하면서 일부러 답을 안 했어요. 너무 화가 났거든요. 그러자 악을 쓰며 다가오더라고요. 물 묻은 장갑을 벗고 아이 앞에 앉아 얘기했어요. 엄마가 너무 힘들다고. 이제 그만해 줬으면 좋겠다고요.
나도 안 하고 싶은데 계속 말이 나와요.
아이는 울먹이며 그렇게 말하더군요. 피로와 짜증이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변했습니다. 작은 몸을 끌어안고 쓰다듬었죠. 엄마도 너를 사랑한다, 수없이 중얼거리면서요. 다행히 집 근처 육아종합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었어요. 많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알려주신 대응 방법으로 숨통이 조금 트였어요. 예를 들어 공연을 보다가 표현이 시작되면 서로 약속을 하는 거죠. 이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는 손을 꼭 잡는 걸로요. 어떤 형태로든 응답만 해주면 아이는 안도했어요. 엄마의 꾀는 점점 늘어 허밍으로 답하기도 하고 사랑의 '사'자만 크게 외쳐주기도 했지요.
한날은 제가 물었어요. 왜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냐고요. 아이가 말하더군요.
엄마가 어느 날 나를 안 사랑할까 봐 너무 두려워요.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바로 너인데 말이에요. 애처로웠습니다. 마음을 열어 보여줄 수 없다는 게 너무나도 답답하더군요. 그렇게 함께한 사랑하는 날들은 다행히도 7살이 되면서 점점 줄어들었어요. 친구들과의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표현이 줄더라고요.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해방인가 싶었어요.
그 말을 다시 시작한 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돼서였어요. 약속했던 숙제를 하지 않아 혼이 나는 상황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엄마의 잔소리를 듣던 아이가 갑자기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더라고요. '엄마, 사랑해요.'라고요. 두려움이 터지는 찰나를 직관하자 오싹 소름이 돋았습니다. 1년 만에 찾아온 사랑해 감옥에 다시 한번 갇히는 순간이었어요. 아차 하는 마음에 후회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스위치를 누른 사람은 다름 아닌 저였으니까요.
그로부터 11개월을 사랑과 함께 했습니다. 과거를 들춰서 해결방안을 찾아봐도 답은 없었거든요. 그저 묵묵히 아이의 불안을 감내했습니다. 때로는 짜증도 내면서요. 어느새 턱 밑까지 오는 머리통을 붙잡고 '엄마도 사랑한다고~!'를 외치며 뽀뽀 형벌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물에 젖은 침울한 눈동자로 불쑥 사랑해를 외쳤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거든요. 네가 불안하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줄게,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다행히 이 증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 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다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생활에 문제는 없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상황을 바꿔 줄 운명적인 조언을 만났습니다.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한테요. 자료를 찾던 중에 아이 생각이 나서 한 번 물어봤거든요. 이런 상황인데 어떡하면 좋겠냐고요.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많은 기대는 없었어요. 화면에 떠오른 글을 차근차근 읽다가 한 대목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동은 애정과 인정 욕구가 높아, 특정 관계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찾으려 노력하는 반면, 그 과정에서 불안과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빈도가 높다. 현재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애정 확인 강박은 다른 대인관계에서도 유사한 패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속적으로 본인의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반응에 의존할 경우, 정서적 자립 및 스트레스 해소 능력 발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조언보다는 예상에 가까웠지만 적잖이 놀랐습니다. 이제 곧 3학년이 될 텐데 아동기의 중반을 지나 독립심을 키워가는 나이잖아요. 무작정 받아주는 지금의 방식이 잘못됐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결심했죠. 이제는 무시해 보자고요. 물론, 무작정 무시로 시작한 건 아닙니다. 아이를 앉히고 진지하게 얘기했어요. '마음이 힘들 때마다 언제까지고 엄마한테 의지할 수는 없다.',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이겨내는 힘을 길러보자.'라고요. 하루 한 번만 진하게 사랑을 외치는 걸로 합의를 봤어요.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솔직히 반신반의했거든요. 결국은 대답할 때까지 나를 몰아세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아이는 평소처럼 사랑해를 반복했지만 제가 무시하자 금세 표현을 멈추더라고요. '힝' 하는 귀여운 투정과 함께요. 버릇이 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답한 적도 있지만 아이는 보너스라며 웃고 넘어가더라고요.
허무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노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자립심을 뺏은 건 아닌지, 너무 오냐오냐 키운 건 아닌지 후회되고 속상하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강하게 나갈걸 아쉽기도 하고요.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긴 시간, 맹목적인 사랑에 답해줬기 때문에 비로소 아이가 안정을 되찾은 건 아닌가 하고요. 만약 그렇다면 그동안의 고통과 인내는 헛되지 않은 거라고요.
같은 말을 계속 듣는 건 고장 난 시계 속에 갇힌 느낌이었어요. 대답을 되풀이하는 건 출구가 없는 길을 반복해서 도는 것 같았죠. 하지만 아이도 분명 힘들었을 겁니다. 분명 저보다 더한 불안과 초조를 가지고 제 품을 찾아왔겠지요.
우리는 이제 편해졌습니다. '사랑해요.'라는 말은 아이가 원할 때 한 번과 자기 전 한 번으로 늘어났어요. 마지막 한 번은 제가 제안한 겁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는 저의 진심을 꼭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기 전, 아이는 두근거리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이제는 서로가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어요. '큼큼' 소리를 내며 뜸을 들이는 순간조차 행복합니다. 마음 놓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물론, '사랑해'라는 말과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