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

존재론의 멸종위기

by 승환

인간은 존재한다.
내 눈앞에 있는 저 인간도 존재한다.
나는 그 인간을 눈에 담은 뒤 가볍게 목례를 하거나,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하는 예의를 갖출 수 있다.
이것이 존중이다.

상대 역시 목례를 돌려주거나 손을 맞잡아 흔들며 그 존중을 되갚는다.
이것이 사회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확인하는 순간, 사회적 연결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길을 가면서 눈에 담기는 모든 사람들과 존중을 교환할 필요는 없다.
한다면 좋겠지만, 그러면 인생이 너무 버거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관심’을 사용해 존재의 시간을 아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존중이 교환되어야 할 상황에서 종종 ‘무대응’이라는 행위가 나온다.
내가 손을 뻗었는데 맞잡지 않는다든지,
내가 목례를 했는데 고개를 까딱하지 않는 그런 행위들 말이다.

‘무시’는 관계가 존재하거나, 적어도 관계의 가능성이 있을 때만 성립한다.
그렇다면 존중을 무시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그 존재(인간)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다.
마치 벤치 앞에서 감자칩을 쪼아먹는 비둘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취급을 하는 것이다.

이로써 무시, 즉 ‘무대응’은 존재를 지워버리는 모욕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심각한 모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요즘은 이 ‘무시’라는 행위가 너무 흔하다.
가장 강한 욕설들인 ‘씨발’, ‘개새끼’, ‘병신’이 더 이상 강하게 들리지 않듯,
무대응 역시 너무 흔해져 그 독기가 약해졌다.

특히 나 같은 20대 남성 주변에서는 뭐… 흔한 일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무대응’을 고차원적인 선상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귀찮아서’, ‘흥미가 없어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욕설이 원래 이런 뜻이었지?”
이런 류의 문제와는 닮았지만, 결이 다르다.

내가 말하는 문제는 이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점차 잊어가고 있다는 것.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의 무게조차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