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력 불능의 고통
바쁘다.
1년전 이맘때 쯤, 마땅한 연고도 없는 호주에 와서 1년동안 살다보니 관계과 인연이 생겨서 연말에도 나름 시끌벅적하게 보냈다.
관계와 인연이... 증식을 한다고 해야하나?
한 명을 알게되면 거기서 파생되는 세 사람이 나타난다.
인스타그램을 교환하고, 이름을 주고받고, 인생관을 듣고...
이렇게 사람을 만나다보면 내가 막상 누구한테 소개 시켜주기 부끄러운 사람은 아니구나, 이것 참 다행인 일이 아닐 수가 없네, 이제까지 헛 살아오며 철학을 한게 아니구나, 정말 감사한 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머릿속은 범람하는 새로운 정보들 덕에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다.
아... 좀 시끄러운데... 살짝 외로워지고 싶다.
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한다.
아주 복에 겨운 소리가 틀림없지만 이 문장의 이면에는 숨은 속 뜻이 있다.
사람을 만나려면 돈과 시간이 든다.
돈은 뭐... 항상 있어도 부족한 것이 돈이니 그렇다고 치고,
문제는 시간인데, 철학이던 뭐던 헛소리를 배설할 시간이 없다!
약간 똥 참아서 똥독이 오르듯 철학이 머릿속에만 맴돌고 배출을 못하니 철학독이 올라서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
이게 범람이 아니라, 어느정도 채워지다가 무의미라는 구멍으로 사이펀 현상이 일어나며 사라진다고 해야하나?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버린 금반지처럼, 한 번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린 철학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정화조를 뒤져서 찾을수야 있지만, 이게 헛소리와 철학의 사이에서 맴돌다 사라지는 단초인만큼... 뭔가 굳이굳이 술을 들이부어 마시고, 스스로 게슈탈트 붕괴를 일으키는 정신적인 자해를 통해 되찾기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느낌이 든다.
제일 크게 경각심이 드는 것은, 이것을 반복할 수록 내면 관조력과 철학력이 줄어들며 내가 제일 되기 싫어하는 범인(凡人)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면모를 신경쓰자니 내가 평범해지는 것 같고, 또 내면을 다시금 각잡고 다듬어보자니 사회적으로 외톨이가 되어 고립에 처할 것만 같다.
이 딜레마는 그저 시기적 특수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주변 사람의 구성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은 나의 탓인가...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그냥 다시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떠나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뭐... 한달만 지나도 외로워서 징징거릴게 뻔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