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장 간단하지만, 영원한 질문

by 승환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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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서 나의 존재의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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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존속을 넘어선 생명의 목표와 죽음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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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글로 남기고 싶은 것은 쓸데없는 흰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건네기엔 너무 일찍 던진 화두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질문은 나라는 개인에겐 짧은 인생의 뿌리이며 시작점이고, 누구나 고뇌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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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버지가 던진 하나의 질문이 그 시작이다.

"너는 어디에 존재하느냐"


지금은 그 심오한 질문을 듣고 즐겁게 고민을 하고 기꺼이 토론을 하겠지만, 순수했던 그때의 나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길지 않은 문장의 파급력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몇개월을 넘어 나의 무의식에 완전히 안착했으며, 몇 년이 지나 고작 초등학교 고학년쯤엔 허무주의에 빠져 니체의 책을 읽으며 불신지옥을 외치는 기독교 광신도들의 발치에 침을 뱉는 망나니가 탄생했다.


여러 시대의 철학책을 읽고 난 뒤엔 판타지 장르에 나오는 신성력에 빠져 여러 종교의 경전을 읽고 신화까지 읽었다. 못 믿을 것도 없었지만 손이나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지도 않고 나를 괴롭힌 놈들 머리 위로 벼락은커녕 먹구름 한 점 끼지 않는 것을 보니 더더욱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냥 농담삼아 성경 구절을 읊을 수 있는 무신론자 미친놈이 되었을 뿐, 지식은 성장했어도 외면은 광인에 가까워져갔다.


한 때의 단순한 망상으로 끝나지 못한 절대 풀 수 없는 난제는 때때로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나는 3-4개월에 한 번 씩 2-3주 정도 우울증이 찾아오곤 하는데, 평소엔 그냥 단순한 우울감과 불안감에 다 부숴버리고 싶은 생각뿐이지만 가끔 자기 직전에 저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정말 위험해진다. 특히 알코올이 혈관을 돌 때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개X끼가 되어선, 아까워하던 위스키로 병나발을 불며, 반 쯤 사장된 단어로 된 시를 읊으면서 죽음을 등한시하는 유사 독립투사 애늙은이는 작은 재앙 그 자체로 봐도 무방하다. 지금은 혼자 자취를 하면서 그 파괴력이 많이 약해졌지만 나는 성인이 되고 5년동안 그 한순간의 폭풍을 평소에 미리 잠재우려 노력해 왔다.


이 때문에 아버지를 원망한 적은 없다.... 아니 솔직히 몇 번 있기는 한 것 같다만 여전히 나에게 이상주의와 실리주의의 괴리를 일깨워 주시고, 본인 스스로도 지긋한 나이에 비해 열려있는 마인드로 괴리적 철학을 탐구하시는 분에게 나는 근본적인 감사를 느끼곤 한다. 다만 정치 이야기에 열을 올리실 땐 잠시 그 마음이 퇴색될 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평소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이 모든 고통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다.


고대 그리스가 아닌 현대사회에서 이만큼 쓸데없는 소리가 흔치는 않다만, 누구나 한 번 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 12년 내지 16년을 차가운 책상에 앉아 지겹도록 공부를 하다, 이후 40년을 사회의 작은 부품으로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작은 존재의 고통엔 필히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거대한 우주에서 가장 똑똑하고 오만한 존재가 삶의 터전인 모행성을 파괴하며 서로의 우위에 서려고 하는 행동엔 필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아무런 이유 없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다른 존재를 내 밑으로 끌어내리고,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생사여탈권을 나의 알량한 행복을 위해 흔드는 행동은 너무 잔혹한 것이 아닐까

이런 것들을 추악하다 여기면서도 그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몇 마디 글로써 회개를 바라는, 거울 속의 모순에 괴로워하는 자기혐오에 빠진 한 인간의 고통 속엔 사실 뜻깊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비싼 밥 먹여놨더니 헛소리 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오늘 먹은 짬뽕 순두부 속에 들어있던 차돌박이를 희생한 소를 위해서라도 나는 인간이 궁구할 만한 목표가 있다고 믿겠다.


이렇게 보니까 미친놈이 따로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