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과 순응, 선택의 기로
민감한 화두를 하나 꺼내 보겠다.
인터넷을 떠돌다 흥미로운 장면을 보았다. AI를 사용한 예술가가 댓글에서 지탄받는 것이었다. 나 역시 처음엔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껴 여론에 편승할 뻔했으나, 잠시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일부 예술가 집단은 AI의 사용을 ‘치팅’이나 ‘비윤리적 행위’로 낙인 찍으며 배척한다. 그러나 이 현상은 단순한 윤리 논쟁을 넘어, 기술 발전이 불러온 사회적 불안과 저항의 전형적 모습이다.
겉으로 보자면, AI가 인터넷에 공개된 기존 작품을 학습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기존의 저작권 의식과 충돌한다. 게다가 예술이라는 직업은 생계와 직결되기에, 예술가들이 위협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방어 본능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방어 본능이 법적 제도나 합리적 장치가 아닌, 집단적 여론과 도덕적 압박으로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고여버린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끼리의 불문율’, 곧 집단적 텃세와 다르지 않다.
역사는 늘 증명해왔다. 기술의 발전을 ‘밥그릇 보전’이라는 명분으로 억누르려 한 집단은 결국 퇴보했다. 청나라와 조선의 쇄국정책이 그러했고, 끝내 그들은 무너졌다.
19세기 영국의 루다이트 운동 또한 같은 맥락이다. 당시 노동자들은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믿으며 방직기와 기계를 파괴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은 더 많은 일자리를 낳았다. 지금 우리가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스마트폰으로 읽는 이 현실이 그 증거다.
결국 역사는, 발전을 거부한 집단이 아니라 발전을 받아들인 집단이 살아남았음을 보여준다.
AI 창작은 예술의 종말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의 또 다른 변형이다. 사진이 나왔을 때 회화는 끝나지 않았고, 영화가 생겼다고 연극이 사라지지 않았다. 디지털 아트가 보편화되었어도 전통 예술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술은 형태와 역할이 변할 뿐,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고대에 신을 위한 의례로 시작해, 현대에 표현과 개념의 실험으로 확장되어온 것처럼.
우리 인간은 지금, 화승총을 든 군대 앞에 선 궁수다. 아무리 정교하게 활을 당겨도, 화승총이 등장하면 전쟁의 양식 자체가 달라진다. 예술의 과도기 또한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