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재판 받은 썰

적어도 10년치 술안주

by 승환

호주! 체모가 꺼멓건 하얗건 상남자들의 호탕함이 가득한 나라!
난 이 나라가 좋다!


호주에서 법원에 출석해 재판을 받은 썰을 한 번 풀어보겠다.


세상 어느 미친놈이 이역만리 호주에서 외노자 생활하다가 법원까지 가서 재판을 받아보겠나? 보통은 법원 출석일까지 한 달 정도 유예가 뜨면, 그 전에 고국으로 돌아가버리지.


일단 하나는 짚고 넘어가겠다. 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뭐… 교통법규상 위반을 저지르긴 했지만, 이게 중대한 사항이었다면 호주라는 국가가 그리 호구가 가득한 나라도 아니고, 나도 지갑에 철퇴를 맞았을 것이다.


형사사건 급은 아니고, 교통법규 위반으로 법원 출석 통지를 받은 케이스다.


나는 12월 초에 경찰에게 적발되었고, 그로 인해 1월 14일 법원 출석을 명령 받았다.


호주는(적어도 내가 겪은 케이스는) 특이한 점이 있는데, 법원 출석이 딱히 별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호위반 같은 “대충 벌금 좀 낼 만한” 사안도 상황에 따라 법원 절차로 넘어가기도 하고, 보통은 직접 출두하지 않고 이메일로 서신을 보낸다.


다만 나는 궁금하기도 했고, 직접 가서 정중한 태도를 보이면 판사 재량으로 조금 봐준다는 말을 들은 김에, 정장바지에 셔츠를 빼 입고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겨 직접 가기로 결정했다. (오랜 연휴 뒤에 일하기 싫어서 휴가를 낸 것도 있다.)


나는 현재 시골에 거주하는 만큼 지방법원으로 왔는데, 이 한산한 동네의 법원을 일주일 내내 열어놓으면 법조인들이 할 일이 없어 엉덩이에 좀이 쑤실 것이 뻔하기에, 지정된 날에만 법원을 열어서 일을 한꺼번에 처리한다고 한다.


나는 아침 7시에 일어났고, 법원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0분이었다. 통지서에는 9시 30분까지 오라고 되어 있었지만,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 기다리면 내 인상도 좋아질 것 같아서 좀 일찍 나왔는데… 법원 오픈 시간이 9시더라. 결국 앞에 있던 카페에서 샐러드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아침을 먹고도 시간이 조금 남아서 대기한 결과, 나는 오늘 법원을 제일 처음으로 입장한 사람이었다.


법원은 예상대로 굉장히 오랜 세월이 엿보이는 건물이었는데, 체크무늬 대리석 바닥과 흰개미가 파먹기 딱 좋아 보이는 나무 교회 의자는 그냥… 박물관? 오래된 기차역?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오래 머물기는 싫은 느낌 말이다ㅋㅋㅋㅋㅋ


사람은 처음부터 한 30명쯤 있던 것 같은데, 시간이 갈수록 하나 둘 더 많이 왔다.
인종도 사안도 가지각색이라 재판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대부분은 법 관련 영어라 못 알아들었지만, 이제까지 봐온 해외 드라마에서 주워들은 단어들로 제법 유추가 가능했다.

처음에 직원이 통역사가 필요하냐고 물어봐서 필요 없다고 했는데, 되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진짜 필요 없냐”고 재차 물어보길래 얼떨결에 “필요하다”고 해버렸다.
후에 되돌아보니 사실 필요 없었다. 판사님이 나도 바로 알아들을 수 있게 천천히, 쉬운 영어로 해 주시더라.


오픈런에 성공하기가 무색하게, 나는 통역사를 기다리느라 12시까지 꼼짝없이 3시간을 기다렸다. 12시에 가진 휴식시간에 서기가 다가와 “통역사가 2시에 시간이 된다”고 알려줬다.
그 순간 깨 달았다. 내 출석은 오픈런이 아니라 대기런 이었구나.

결국 나는 12시에 법원을 나서 카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2시부터 다시 20분. 퍼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딱딱한 교회 의자에서 유지하던 꼿꼿한 자세가 한계에 다다르며 허리 통증이 시작될 때 즈음, 나이가 지긋하신 판사와 누나동생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통역사분이 화상 통화로 연결되었다.

나는 담담하게 준비한 대본을 읽으려고 했는데, 판사님은 간단한 사실 확인 질문 몇 개를 던지시고는 바로 판결을 내려 주셨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번에는 정지 연장 3개월로 퉁 쳐주마.
벌금이나 수수료도 낼 필요 없다.
다만 정지가 풀리고 새 면허를 취득하기 전에 운전하다가 적발되면…
다시는 이 호주 땅 위에서 운전 못 하게 해주마.
알았지? ^^”


나는 웃음과 함께 들어온 으름장에 고간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큰 땅만큼이나 큰 배포에 연신 감사 인사를 보내며 마지막까지 한국식 목례인 90도 인사를 드렸다.


대기 시간 동안은 상록수처럼 꼿꼿한 허리를 유지했는데, 피고인석에 서자마자 낭창거리는 허리와 고개를 보며 ‘아, 이 새끼는 그래도 좀 된 새끼구나’라는 마음이 드신 게 분명하다.


이렇게(내가 느끼기엔) 호의를 받고 법정을 나와,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경찰들과 간단한 인사와 농담을 주고받고, 나는 한식대첩3 결승전에서 기쁨의 포효를 내지르는 임성근 님에 빙의 했다.
(물론 음소거를 했다.)


광명을 찾은 듯한 나의 리액션과 기분은 정말 날아갈 듯 기뻤고, 곧바로 주변에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한국 시간으로 평일 오후 1시, 호주 시간으로도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대에 전화를 받아줄 또래 친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하 성실한 친구 새끼들 같으니.


하아… 어떻게 끝내야 하나… 너무 좋다… 진짜 면허 새로 딸 때까지는 자동차 핸들에 손도 안 올릴 것이다. 사실 이 거대한 땅덩어리 위에서 150km 직진 운전을 하다 보니, 이제는 운전을 하기가 싫어 진 것도 있다.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이었다. 근데 가능하면… 다음엔 돈 주고라도 안 하고 싶다.


이름 모를 판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