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깊이는 사유의 깊이가 아니다.
인생은 원래 힘들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당신의 머릿속은 비실용적인 꽃밭이 가득한 것이 분명하니, DDT를 싹 살포해야 한다.
인생은 고통이 가득 찬 것이 정상이다.
만약 인생이 행복으로 가득하다면
우리는 더 이상 발전을 지향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고
그대로 썩어갈 것이다.
시간에 흐름을 맡기고, 그저 배부른 상태만을 갈망하며
햇볕의 따스함을 느끼며 늙고,
그대로 죽을 것이다.
인간은 행복할 때 돼지가 되고,
고통스러울 때 사람이 된다.
인생은 좆같은 고통이 가득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고통에 면역을 기르며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런데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현대 사회는 그것을 정신병으로 분류하고 치료를 하지만,
과거에는 뭐... 미쳤다고 돌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었지
그런데 사실 정신병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기 때문에
평소엔 숨기고 있는 것이 당연시되지만,
당장 자신의 내면부터 파고들어 봐라.
당신도 적어도 한 가지는 있다. 정신병
그런데 그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 중,
그 고통을 느끼는, 견디는 자신을 특별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그것을 정병 프라이드라고 부르는데,
보통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내가 만약 내가 겪은 어떠한 고통을 극복한 이야기를 꺼낸다면,
정병 프라이드를 가진 인간들은 대게 이렇게 반응한다.
"그건 네가 겪은 고통이 별거 아니어서 그래"
"내가 겪은 비슷한 고통은 차원이 다르게 컸어"
이런 식으로 자신의 고통이 더 크다 이야기하고,
타인이 겪은 고통을 폄훼하며, 그 경험을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물론 나도 처음에 이러한 일을 겪었을 땐 기분이 불쾌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냥 그 심리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알아보고, 생각한 것은 이러하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자주 언급되던데,
성취가 없을수록 고통이 자산이 된다.
본인이 인정받기 힘든 자원 즉,
성취, 능력, 사회적 지위, 자신감이 부족할수록
"내가 더 아프다."라는 것이 유일한 우위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피해자 정체성의 보상'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피해자는 도덕적으로 안전한 위치에 있다.
피해자는 비난을 받지 않고,
보호받고,
설명 책임이 줄어들고,
실패의 책임이 외부로 이동하므로
약함은 곧 면책이 되고,
면책은 곧 안전이 된다.
그 피해자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서 자신의 고통을 강조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은 이것이다.
내가 겪은 고통의 극복이란,
자존감이 아주 낮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들릴 수도 있다.
"나는 이겨냈는데, 넌 못하네?"
그래서 방어기제 적으로
"아닌데? 내 건 네 것보다 훨씬 커서 내가 못 이겨 낸 건데?"
라는 말이 고슴도치 마냥 튀어나온 것일 수도 있다.
뭐... 그만 팰까...?
그런데 이렇게 내세울 것 없는 인간이 무조건적으로 위의 사례들처럼 고슴도치 마냥 뾰족해지는 것은 아니다.
뭐 시발 이런 말 하는 나부터 없는데 뭐 어쩔 건데
아무리 사회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어도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들은 많다.
그건 내가 설명 안 할 거다.
내가 뭐라고 설명을 하나?
거울을 보고 뾰루지부터 찾는 인간은 자신의 이목구비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 모른다.
다만 자신의 정신병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아픈 것이 아니라 그것마저 내려놓기 싫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