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콤플렉스

지적 오만으로 인한 비교기반 우월감

by 승환

허구한 날 애늙은이처럼 사유를 하다 보니 생긴 증상이 있다.

현실에선 철학을 논할 사람이 주변에 없으니, 방구석에서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린다.
그런데 반응(댓글)이 시원찮아 재미가 없다.


인지하는 순간 뇌리에 박혀서 계속 사유를 유발하는 화두가 떠올랐고, 나는 그것에 대해 같이 선문답을 해줄 사람이 적어도 한 두 명 정도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내 글에 대한 반응을 기대했고
타인에게 기대를 품었다.
그 기대는 저버려졌다.

그 뒤로 기대를 접었다.

정확히는, 무의식적으로 점점 더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지점부터 몇 가지 일들이 연쇄적으로 겹치기 시작했다.
사유의 밀도가 맞지 않거나, 질문이 애당초 닿지 않거나,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주변의 모두가 머저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걸 '지적 오만으로 인한 비교기반 우월감'으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간단히 '엘리트 콤플렉스'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사실을 인지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단순했다.

‘아 정신 차려야지’

아무리 그래도 이런 종류의 감각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엔 내가 그리 미친놈은 아니었나 보다.
나는 내가 얼마나 하찮은 점에 불과한지 알고 있고, 그렇기에 이런 의식에 취해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도 되는 양 여기는 중2병 같은 태도는 이제 더 이상 내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마인드 세팅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억지로 겸손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았고, 불도(佛道)로서 마음을 다스리려 해도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나는 이렇게 혼신의 힘으로 참고 있는데,
저 치들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멋대로 날뛰는구나.


이런 식으로 좀 더 올드한 말투로 투덜거리고 짜증을 낼 뿐이었다.


그 순간 깨 달았다.
이 감각은 단순히 고쳐먹는다고 사라질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억누르거나 부정한다고 없어질 종류가 아니라, 잘못 다루면 더 음습하고 더 비틀린 형태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다시금 생각을 조정했다.
이것을 선하다, 악하다 단정하지 않기로 했다.
치료의 대상으로, 그렇다고 숭배의 대상으로 보지도 않기로 했다.

내가 찾은 방향은, 이것을 사용의 대상으로 보기로 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을 남에게 겨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인을 깔아보기 위한 무기로 쓰는 순간 이것은 천박한 우월감이 된다.
자기 확신을 과장하고 타인을 재단하는 데 쓰는 순간, 이것은 철학이 아니라 감정의 배설이 되고, 알량한 합리화의 도구가 된다.


그러니 이것은 밖으로 휘두를 칼이 아니라, 역수()로 쥐고 나 스스로의 제동장치가 되어야 한다.

버릴 수 없는 무기를 쥐게 되었다면, 적어도 칼날의 방향은 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감각은 앞으로 내가 철학을 하고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점검하는 데 쓰일지도 모른다.

내 사유가 단순 허영으로 부풀어 오를 때,
내가 스스로를 기만하며 대단한 통찰이라 착각할 때,
내가 사람들 위에 서 있다고 믿으며 자신에게 취하기 시작할 때,
오히려 이 병적인 감각을 역으로 쥐고 나 자신을 검열해야 한다.


네가 지금 타인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통찰인가, 상처의 보복인가.
네가 지금 고독을 말하고 있는 것은 깊이인가, 소통의 실패를 미화하는 것인가.
네가 지금 무결성을 말하는 것은 기준의 엄격함 인가, 아니면 단지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의 포장인가.

벌써부터 들춰보니 무안해지는 질문들이 툭툭 불거져 나온다.

다만 이 질문들을 계속해서 들이밀 수 있어야 한다.


스승이 없어 홀로 정처 없이 사막을 떠도는 느낌이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것은 사막을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미쳐버리지 않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구간은 극복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평생 다루는 방식만 달라질 뿐인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이것을 없애려 들 것이 아니라, 통제해야 한다.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용도를 제한해야 한다.
내 안에서 생겨난 이 비틀린 감각을 ‘내가 옳다’의 근거로 삼을 것이 아니라, ‘나는 언제든지 비뚤어질 수 있다’는 경고로 삼아야 한다.


무기가 이상하게 생겨 먹었다고 해서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엔 기형병기라는 것도 있다.
다만 그런 무기는 잘못 휘두르면 사용자가 다칠 확률이 더 높다.
그러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이 감각이 내게 남아 있다면,
그것은 타인을 베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오만을 먼저 찌르기 위해 남아 있어야 한다.


… 이러다가 훗날에 사바세계에서 떠날 때는 몸에서 사리가 나올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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