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성분
나는 현재 두 개의 직장 중 하나를 그만두고, 자연스레 찾아온 적막이 흐르는 시간을 마음껏 즐기는 중이다.
고막을 찢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난 후, 졸린 눈을 비비며 애써 침대를 벗어나지 않아도 되고,
감겨가는 눈을 억지로 뜨려 힙합의 808 베이스에 신나는 척 몸을 들썩이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수면욕을 양껏 채우니까 피자나 치킨, 마라탕 같은 자극적인 음식들로 내 몸을 망가뜨리고 싶은 욕망도 사그라들어서, 요즘은 직접 요리를 할 때도 굉장히 건강하게 요리를 한다.
이렇게 등 따시고 배가 부르니까 슬슬 불안감이 몰려온다.
내 나이 27살, 이 나이에 미래를 생각했을 때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지만, 나는 그 불안을 철학으로 돌려서 소화하는 사람인 것 같다.
요즘 도통 해소되지 않는, 잉어찜의 잔가시 같은 질문이 하나 있다.
"나의 사유는 진정 나의 사유인가?"
내 사고방식은 많은 위인들에게서 비롯되었다.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위인은 니체이며, 그 외에도 라캉, 데카르트, 베이컨 등등 중학생 시절 읽은 서적의 저자들의 지분도 상당하다.
그리고 전체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나의 부모님이다.
이 과거 자아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들에 대한 인지는 불쾌한 감정을 자아낸다.
물론 좋은 사람들에서 영향을 받은 건 아주 크나큰 축복이라고 할 수 았지만,
철학을 위한 사유를 할 때, 그 사유의 색채 또한 그들에게서 받은 영향을 떨쳐낼 수 없다.
그저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을 빌려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저 내가 좋아했던 역사적 위인의 말을 빌려 말하는 것 같고,
어디에도 나의 주관적인 생각은 들어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고회로가 아니라 그냥 모니터나 스피커 같은 출력장치가 된 것 같은 이 느낌은... 굉장히 불쾌하다.
요즘 인터넷으로 심리나 철학에 대해 리서치를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패턴은 이 출력장치 같은 문장이다.
"~~는 이것을 ~~(이)라고 말했다."
"~~는 이것을 ~~(이)라고 정의했다."
직접 사유하지 않고 그저 이미 죽은 사람들의 말을 줄줄이 늘어놓는 것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철학과는 거리가 멀다.
똑똑한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다. 난 그것을 지향하지만
현명한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것 또한 지향하지만
책이라는 기억을 머리에 때려 박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을 한껏 굴려본 사람을 원한다.
주방에서 레시피 없이는 양파 하나 자르지 못하는 요리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더 푸드 랩"을 줄줄 외울 수 있지만 김치찌개 하나 못 끓이는 사람을 일컬어 요리를 잘한다고는 하지는 않는 것처럼,
그런데 그게 나인 것 같다고, 이 씹어 쳐 먹을
서로 다른 지역의 재료들을 가지고 내 스타일대로 요리를 해봤는데,
알고 보니까 이미 누군가가 레시피를 내놓은 적이 있고,
그 사람을 내가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저 내가 표절을 한 것 같은 이 더러운 느낌이 든단 말이다.
진짜 나만이 던질 수 있는 화두는 무엇일까?
진정 나만이 나아갈 수 있는 사유는 무엇일까?
생명이라는 유기체의 순환구조 속에서 나라는 개체가 남길 수 있는 역사적인 흔적은 무엇일까?
왜 이렇게 유일한 것에 집착을 할까?
인간은 순수한 창조를 할 수 없고, 그저 다른 것에서 영감을 얻어 변형을 시키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지만...
그래서 인간은 신을 믿고, 그를 숭배하며, 그를 닮아가려 노력하는 것 같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소유욕은 인간이라는 종족의 번영을 이루게 해 준 기반에 가까우니까
내가 음악을 했었고, 요리를 좋아하고, 철학을 하는 와중에, 그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받지 않는 선택을 했던 것에는
유일한 나만의 색을 창조한 신이 되고 싶은,
그러한 욕망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자괴감에 가까운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말을 내뱉을 때마다 이러한 고통이 몰려온다고 글을 아예 쓰지 않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그러면 그저 비겁하고 지질한 인간이라고 자인하는 꼴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합리화를 하는 시도 또한 쉬운 길이지만, 나 스스로가 납득하지 못하는 합리화는 자기기만 이므로, 이 또한 하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오도 가도 못한다. 해답은 오히려 정공법에 있을 것 같다.
해체주의적 접근법과 변증법적 접근법이...
에이 시벌... 또...
이쯤 되면 오기가 생긴다.
그래도 재밌긴 하다.
사유를 깊게 진행시키지 않는 것일 뿐,
이런 방식으로 사유의 틀을 넓혀볼 생각은 못했었으니까
이 화두를 던지지 못하는 화두는 고민을 깊게 해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