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작품의 마침표

by 승환

나의 아버지는 철공 예술가라는 직업을 갖고 계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벽에 걸려있던 철로 만든 나무가 우리집의 트레이드 마크였고, 아버지의 작업실에 놀러가서 당신이 진행 중이시던 작품의 진행 과정을 볼 때면 아버지는 항상 작품의 의도와 본인의 철학을 적절히 섞어 얘기해 주셨다. 당시의 나로서는 심미안이고 자시고, 아버지의 작업실에 널려 있던 공구들을 가지고 놀고 싶었기 때문에, 항상 도끼나 드라이버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며,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리고 나중에 나이를 조금 먹고 깨달은 부분이 있다. 아버지의 숭고하고 뜻깊은 철학과 세심한 감성을 담아낸 예술을 설명하기엔… 아버지의 입은 손만큼 유려하게 움직이진 못하신다는 것을

(그땐 내가 산만해서인 줄 알았지만,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설명이 조금 장황했던 탓도 있다)


아버지의 작품은 생각할 부분이 정말 많다. 하나의 철판에서 시작된 나무들과 인간, 의도한 산화, 조명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의미와 작품이 놓인 공간과의 관계성 등 과대해석을 해도 괜찮을 만한 심오한 작품. 나는 아버지의 질문을 통해 철학을 시작했고, 작품을 통해 심미안을 배웠다. 내가 아버지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 이였다면, 그리고 내 주머니에 조금의 여유가 있다면 나는 아버지의 작품을 구매했을 것이다.


21세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상은 급격히 변했고, 고전예술의 생존 방식 또한 그에 발맞춰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예술에 대한 취향과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예술품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볼거리와 자극이 넘치는 시대다. 고전예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작가 스스로 자기 PR과 마케팅에 나서야 한다. 이제 작가는 골방에 틀어박혀 세상에 작품을 싸서 던져내는 존재가 아니라, 홍보와 스토리텔링 또한 해야 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아버지는 구시대 예술의 과도기에 예술을 시작하셨고, 신시대 예술의 생존법을 습득하시기엔 나이가 많으셨다. 아직도 유튜브 사용법을 처음 알려드리고 난 후, 골프 영상을 화장실에서도 볼 수 있다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는 요즘 아버지의 SNS 계정을 만들어 작품과 사진을 올리고 있다. 재미있게도 작품 사진을 전달받아 편집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전화로 아버지를 인터뷰해서 작품의 의도를 설명하는 캡션으로 줄이는 것이 제일 고역이다.


설명이 과하다면 관객은 설명에 갇혀, 자유로운 감상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고, 설명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설명이 부족하다면 이 난잡한 철 덩어리가 당최 무엇인지 이해하기 전에 질려서 자리를 옮겨버릴 것이다.


설명은 중요하다. 비슷한 수준의 동종업계 종사자, 아니면 이미 그쪽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결국 설명을 통해 그 작품을 보게 되고, 한 줄의 텍스트가 언변 좋은 사람이 설명을 해준다면 그 작품의 수준 또한 달라 보일 것이다.

설명이란 작품을 완성하는 제일 중요한 마침표이자 작품감상에서 제일 중요한 길을 비춰주는 횃불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맛깔난 설명” 일까?

좋은 설명은 교과서가 아니라 지도라고 생각한다. 어디를 봐야 할지 방향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관객이 스스로 걸어가게 둔다. 나에게 있어 맛깔난 설명이란 ‘소재와 의도, 그리고 감각을 건드리는 한 줄’을 남기는 것이다.


설명은 작품에 숨을 불어넣는 마지막 붓질이다.

(사용된 사진 둘 다 아버지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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