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배려의 시작이자, 자격

by 승환

인생이란 것이 으레 그렇듯, 가장 폭발적인 분노는 타인과의 대립에서 온다. 상황이 거지같을 때는 참을 인忍 두 번 정도만 쓰고 ‘어쩔 수 없지…’ 라고 넘어가는 반면, 타인과의 충돌로 불화가 야기되거나 피해를 입는다면 참을 인 세 번을 쓰고, 넉넉하고 인심 좋게 두 번 정도 더 쓴다 하더라도 붓을 역수로 쥐고 상대방의 미간에 꽂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불거져 나오기 마련이다.

나는 보통 화가 아무리 나도 그 자리에선 표정과 입을 굳히고 뒤돌아서 자리를 뜬 후, 생각을 정리한 후 대화로 푸는 사람인데, 인생이 다 그렇듯 머리에 열이 뻗치는 상황이 생겨서 생각을 정리하다가 떠오른 문장이다.


“내가 당신을 형이라고 부를 수 있게, 당신이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이 말의 속 뜻은 대충 짐작이 가듯

‘자꾸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내가 당신에게 개새끼라고 밖에 부를 수 없다.’

‘존중을 받고 싶으면 그에 맞게 행동하라’

이런 뜻인데, 다행히 실제로 내가 입 밖에 내뱉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뒤통수가 뜨끈뜨끈 해지고 무의식 적으로 힘이 잔뜩 들어간 눈에서 본능적인 살기가 피어올랐지만, 법치주의 사회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본능적인 폭력성을 짓눌렀다.

낮은 음으로 읊조린 대답으로 경고를 암시하고 난 후, 주먹을 쥐락펴락 하며 도 닦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머릿속으로 ‘옴마니반메훔’ 이니, ‘무량수불’ 이니, ‘아미타불’ 을 찾다 보니 마음은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참 말맛이 좋은 문장이라 유심히 생각을 해본 결과 나는 문장의 핵심인 호칭 부분에서 조금 생각을 해볼만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불러주는 호칭에 따라 행동양상이 바뀌고 심지어는 사고방식마저 바뀐다는 것인데, 우리 한국인들은 호칭에 자연스럽게 나이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 그리고 형, 누나, 선배, ~님 같은 호칭을 붙이면 자연스레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호칭에서 오는 존중은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호칭이란 내가 그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지 자동으로 지급되는 자격증이 아니다.

나이가 많다고 주는 선물이자, 상대의 위치를 존중하는 선물이며, 겸양의 산물이고 예를 갖추기 위한 배려의 시작이다.


유교에서 “군군신신부부자자” 라 했다. 군자는 군자 답게, 신하는 신하 답게, 아버지는 아버지 답게, 자식은 자식 답게 각각의 위치에 걸맞은 역할과 도리가 있을 때 사회가 바로 선다는 뜻이다.

형이라 부르면 갑질하고, 선배라면 뒤통수 치고, (국회)의원님이라 부르면 내 통장을 털어가기 바쁘다. 군군신신이고 나발이고는 사라지고 제 할 일도 못하면서 윗자리에 앉아 ‘존중’ 을 강요한다. 그것은 더 이상 예의가 아니라 강요이고 구질구질한 권위의식이다.

형과 누나라면 동생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선배라면 자신이 걸어온 길을 걷는 자에게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 국회의원이라면 자신을 뽑아준 민중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호칭의 무게이자 호칭을 들을 자격이다.


칭호는 자격이다. 그리고 그 자격은 자기가 증명하는 것이다. 입으로 “형이야” 라 외친다 해서 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예의를 잃은 게 아니다. 예의를 갖출 만한 사람을 못 만나서, 다들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존중은 말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제발, 당신을 ‘형’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를 스스로 보여 달라.

그게 싫다면?


내가 개새끼라 불러도 억울해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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