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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구 Oct 19. 2022

현실자각

이력서

출처 : unsplash



2년제 대학의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했다.

     

이력서를 정성스레 작성하고 처음 지원한 곳에서 면접 제의가 왔다.   

  

면접관이 보는 것은 단순했다.     


붙임성이 좋은지, 끈기가 있는지.     


업무 역량에는 관심 없어 보였다.      


다행이었다. 업무 경험 자체가 없었으니.      


생일날 학과 동기생들 대부분이 참여할 정도로 인간관계가 좋다고 했다.  

   

면접관의 기준에 부합했는지, 아님 기대 자체가 없었는지,      


어쨌든 운 좋게 합격했다.     


합격 후 전화로 연봉이 얼마인지 통보받았다.     


월급에 대한 기대치는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했다.      


합격 전화를 받고 뿌듯한 마음에 소식을 알렸지만 주변의 큰 축하는 없었다.      


그냥저냥 이제 사람 구실은 하는구나 정도의 반응들.      


대기업도 공기업도 아닌. 전문직도 아닌.     


직원 5명의 이름도 낯선 작은 회사. 어쩌면 당연했다.     


그래도 내 인생 첫 정규직 직장이었기에,      


4대 보험이 되는 첫 직장이었기에 자부심은 컸다.     


회사는 경관조명을 제작하는 회사였다.     


담당 업무는 영상 그래픽.     


LED 화면에 송출할 영상 그래픽을 만드는 것이었다.      


디자이너가 우선 작업한 시뮬레이션 작업물에 내 영상이 더해지는 방식이었다.     


마감일은 항상 촉박했고, 팀장은 있었지만 없었다.     


이제 막 입사한 2명의 풋내기들이 대형 프로젝트의 중심에 서 있었다.     


사장님은 우리가 만든 시뮬레이션 영상을 가지고 영업을 하러 다녔다.     


영업력이 좋으셨는지 미팅은 계속 잡혔다.      


당연히 작업물의 개수가 빠르게 늘어갔다.     


근무시간이 길어졌다. 밤새는 것도 다반사였다.     


어렵게 따낸 거래처에서 영상에 대한 요구사항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능숙하지 못한 틀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내가 모르는 건 회사가 모르는 것이 돼버렸다.     


요구사항을 구현할 수만 있다면 매일 밤을 새도 좋다고 생각했다.     


책을 몇 권을 사서 끼고 다녔는데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절박했다. 해내고 싶었기에.     


역량도 감각도 부족하다는 것만 온몸으로 체감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사장님은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고 했다.     


잘릴 줄 알았는데 위로를 받았다.     


몸 바쳐 일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역량이 시험대에 오르는 일은 빈번해졌다.     


요구사항이 이행되지 않아 계약이 취소될 뻔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다 나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두에게 미안하고 모두가 불편해졌다.     


결국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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