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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은 Dec 03. 2023

새로운 나라, 새로운 마을, 새로운 골목

한 번도 보지 못한 모퉁이를 돌아 처음 보는 풍경을 보고 싶다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이 코너를 돌면 1층은 셀프 사진관, 2층은 마라탕 집이 상주하는 건물이 자리 잡았고, 옆에서는 핫도그를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다. 바쁘고 항상 깨어있는 대한민국 서울을 벗어나 골목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곳에 가고 싶다. 아담한 오두막집이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의 저택이, 김매기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 논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곳. 막다른 길이어도 괜찮으니 새로운 곳으로 걸어가고 싶다.


 우리 모두에게는 ‘찜하기’ 버튼으로 마음에 저장해 놓은 여행지가 있다. 엄마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여름을 지내고 싶어 하고, 친구는 일본의 닌텐도 월드에 가고픈 것처럼 꿈꾸고 있는 여행은 제각기 다르다. 나는 <빨강 머리 앤>의 배경인 캐나다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여행하고 싶다.










 앤은 ‘애번리’라는 가상의 마을에 산다. 애번리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분위기는 내가 상상하던 책 속의 애번리와 비슷할 터라고 기대한다. 그곳이 활기찬 햇살을 쬐는 나무가 주르르 모여 새와 아침 인사를 나누는 곳이라 믿는다. 앤이 말하는 ‘scope for imagination’, 즉 ‘상상의 여지’가 가득한 곳.

 ‘저녁에 학원 가야 하는데’ 같은 걱정은 구름 위로 흩어져 푸른 하늘이 되고, ‘어른이 되면 어떻게 살아가지’하는 근심은 바람이 되어 내 귓가에서 살랑이지 않을까?

 자전거를 타고 길을 따라가다가 넓게 펼쳐진 잔디와 시원한 나무 그늘이 보이면 자전거를 세우고 그곳에 긴 시간 동안 앉아 주변을 둘러보아야지. 나무에 기대서 그 순간을 공책에 담아두어 10년, 20년 후에도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를 기억할 것이다.










 ‘꼭 가보고 싶은 곳’ 리스트의 두 번째 항목은 영국, 그중에서도 특별히 런던이다.

 런던에 가보기를 꿈꾸는 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빅벤, 런던아이, 타워 브릿지와 버킹엄 궁전까지. 영국에 대해 조금 더 아는 사람에게는 대영 박물관이나 켄싱턴 궁전도 익숙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거창한 랜드마크 말고 영국의 길거리에 앉아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 알파벳 ‘r’을 발음하지 않는 영어 말소리와 투둑투둑 비가 내리는 런던의 거리 한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온몸으로 영국을 빨아들이고 싶다.

 영국에는 오래전부터 쭉 자리를 지켜온 건물이 많다. 과거의 모습을 수정구슬로 엿보는 느낌이랄까. 저기 보이는 큰 문을 밀어보자. 고풍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사교 모임을 가지고 있다. 발걸음도 우아해 보이는 이곳 영국.

 영국에 도착하면 나도 신사, 숙녀가 된 듯 사뿐사뿐 걸어 다녀야겠다.


 런던 말고도 영국에는 가고 싶은 곳이 많다.

 예를 들어, 워릭셔 주의 스트랫 포드 어폰 에이본. 이렇게 말하면 이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다시 말하자면,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되어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이 다녀간다. 나도 그중 하나가 되어 셰익스피어가 밟았던 땅 위에 내 발을 살포시 올려놓고 싶다. 골든 글로브 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까지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텐데.










 다음 목적지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이다. 모두 한 번은 들어본, 사진을 보고 입을 떡 벌린 채 ‘저게 진짜라고?’라는 말을 내뱉게 하는 신비로운 사막. 반짝이는 소금 속에 맑은 하늘이 보이는 사막.

 그 사막을 평생 가보지 못한다면 나는 한 맺힌 귀신이 되어 그때라도 우유니에 갈 것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사막은 모래와 바람뿐인 허허벌판이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평행세계로 향하는 소풍 길처럼 모든 걸 그대로 비춘다. 우유니 사막은 얼마나 마음이 깨끗하길래 자신만 간직하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덧없는 순수함을 나누는 걸까?

 이 예쁜 마음을 가진 사막에서 난 오르탕스 블루의 시 ‘사막’을 읊으며 시의 화자처럼 가끔 뒤로 걷고 싶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나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요즘 비행기 티켓 값이 많이 올랐다. 특히 서유럽은 2배 가까이. 코로나가 세계 사람의 발목을 묶어놓는 시간이 끝나서 나처럼 어디든 가고 싶은 사람이 많은가 보다.

 당장 강, 산, 바다를 건너 여행을 갈 수 없는 노릇이니 집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는 횡단보도 건너의 공원이라도 가보아야겠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바람의 소리를 들어보자. 잠시 눈을 감아보자. 이곳이 빨간 머리 앤이 뛰놀던 길이다. 우산을 든 신사들이 다니는 공원이고 바닥에 고인 맑은 물이 하늘을 닮은 사막이다.

 여행지에 가보지 못해도 그곳에 가고 싶다고 소망하고, 기대하는 것도 여행 자체만큼이나 재미있는 일이다.


 그동안 꿈꿔왔던 당신의 여행지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이 기다린다고 믿을래요. 모퉁이는 그것대로 매력이 있어요.

그 너머로 어떤 길이 이어질지 궁금해요.

 

<빨간 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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