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던 날, 화분 하나를 샀다

충동보다 강한 기다림

by 후루꾸

오늘도 죽진 않았다.

어제처럼.

그래서 또 확률에 내 하루를 걸었다.


종교는 있으나 무관심했다

나는 평범한 토쟁이었다. 인터넷 도박 중독자.

직장에선 일하는 척하며

스포츠 점수판만 계속 새로고침했고.

오후엔 국내야구 새벽엔 MLB와 해외축구를 보며

내 하루는 스포츠로 시작해 스포츠로 끝났다.


가끔 이기고 자주 졌다. 사실 경기를 본 것도 아니다.

그저 나와 같은 도박쟁이들과

채팅창에서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낄낄대는 게 좋았다.

저들의 한심함이 내 한심함을 정상처럼 느끼게 해줬다.


돈을 잃으면 물건을 부쉈다.

나를 부수고 싶었지만

잃을때마다 부쉈으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을거다.

물건은 어차피 따면 다시 사면 되니까.


잃는 건 돈만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인간관계가 모두 무너졌고

직장생활에도 영향을 줬다.

머리로는 내가 제정신 박힌 사람이 아닌걸 알았지만

안다고 멈출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평소처럼 오타니가 홈런 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식물을 사라.’

이 무슨 뜬금없는 울림인가.


나는 종교적인 사람도

식물에 관심 있던 사람도 아니었다.

종교는 있으나 무관심했다.

그날은 그냥 그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라도 하느님이 식물사면 오타니가 홈런치게 해준다는 계시인가 하며 사러갓다.

그런 초등학생도 안 할 법한 유치한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실제로 식물을 샀다. 아주 단단히 미쳐 있던 거 같다.


올리브나무였다. 그냥 끌렸다.

성경에도 나오는 나무라 하니 들여왔다.

집에 가져오고 나서도 황당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오타니는 그날 홈런을 치지도 않았다.


신의 계시에 어긋난 그 화분을

부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차마 부수지는 못했다.

생명이니까 양심에 찔렸고

뭐 알아서 살아라 하며 그냥 방치했다.

그냥 물만 한 번 줬다.


잊고 살며 며칠이 지나자 새 잎이 났다.

작고 여린 잎이었다. 이상하게 귀여웠다.

사회에선 아무 쓸모도 없던 내가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나도 모르게 선발투수가 아닌 식물 정보를 검색했고

그날은 국내야구 배팅도 잊었다.

스포츠보다 식물이 더 궁금한 날이 온 거였다.


나는 매일 화분을 본다.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그저 이유 없이 데려온 화분이다.


그냥 그게 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나는 그 화분을 버리지 못했다.

그날 아무 이유 없이 데려온 화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