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고 싶었지만 생명이었다

신은 홈런을 치지 않았다.

by 후루꾸

신은 홈런을 치지 않았다

나는 그날 홈런을 기도하며 식물을 샀다.

하느님이 식물을 사면 오타니가 홈런을 치게 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말이 안 되는 줄은 알았지만 진심이었다.

뇌가 망가졌던 거다.


집에 돌아와 올리브나무를 창가에 뒀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싶었고 괜히 민망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진짜 통했을까 하는 마음으로 야구 중계를 켰다.


내 마음속 이성은 말도 안 된다며 기대 안 하는 척했지만,

그 안에 진짜 기대도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타니는 그날 홈런을 치지 않았다.

신은 한국의 도박 중독자 하나 때문에 세계를 움직일 정도로 작은 존재가 아니었다.


나 혼자 생각한 신의 계시를 어긴 화분은 그렇게 조용히 존재했다.


부수고 싶었다. 늘 그랬다.

진 게 분하면 뭘 하나 부쉈고

화분 따위는 내겐 익숙한 파괴 대상이었다.

하지만 화분은 부술 수 있어도 생명은 부수지 못했다.


그건 생명이었고 가전제품을 부수는 것과는 달랐다.

아직 살아 있으니까.

그리고 이상하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 안의 분노를 생명을 멸시하려 한 미안함이 집어삼켰다.

내가 마음대로 데려왔고 내가 경기를 못 맞춘 거다.

이 아이는 나에게 오타니를 믿으라 한 적도 없고 그저 살아 있을 뿐이었다.

정신병자의 조울증세로 한 생명이 사라지면 너무 슬플 거 같았다.


나는 내가 감정이 없는 줄 알았고

수많은 배팅 속에서 감정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대하진 못하겠다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작고 약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그랬던 거 같다.

아직도 무슨 감정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렇다고 식물도 모르는 내가 잘 키울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내가 죽인 게 아니라 걔가 죽은 거면 죄책감이 안 들 것 같았고

난 최소한의 예의만 주려 했다.

그래야 나의 죄책감과 미안함이 쓸려 내려갈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식물에 과몰입한 나 자신은 싫었던 거 같다.


물만 한 번 줬다.

그게 다였다.

그러곤 잊었다.

며칠 뒤 작고 여린 새잎이 올라왔다.

홈런은 없었고 대신 생명이 있었다.

그게 두 번째 이상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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