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 만든 표정이었다

공감이 따뜻하다고 믿지 않게 된 이유

by 후루꾸

감정노동을 오래 하면 상대의 얼굴보다 상황부터 보게 된다.

상대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는 관심 없고

어디를 먼저 보는지 어떤 손짓을 하는지가 중요해진다.


반응을 빠르게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오늘도 웃는다.

입꼬리를 올리고 눈썹은 약간 처지게 만든다.

친절해 보이는 얼굴

그게 공감의 표정이다.


나는 그 표정을 잘 만든다.

어쩌면 너무 잘 만들어서 문제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내가 진심으로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이 무섭다.

말 한마디에 마음이 뒤틀리기도 하고

작은 무시에도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 하게 되니까

그래서 나는 더 웃는다.


공감하는 척이라도 해야 누가 나를 덜 미워할 것 같아서.

누구는 이런 말도 했다.

“편의점은 감정 필요 없지 않아요? 그냥 계산만 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아니었다.

누군가가 “힘드시죠” 하고 말했을 때

나는 “아뇨, 괜찮아요” 하고 대답했다.

진짜 괜찮지 않았는데 그냥 괜찮다고 했다.


그래야 정말 괜찮은 상황이 생길거고

괜찮다는 말을 자꾸 하면 진짜 괜찮아질 줄 알았다.

말에 내 기분을 끼워 넣으면 그 말이 나를 좀 덜 무너지게 만들어줄 줄 알았다.


하지만 웃고 맞장구치고 배려하는 척하는 일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이었고

내가 정말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 수 없다는 증거가 되어갔다.


사람들은 공감이 따뜻한 감정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공감이 무섭다.

공감하는 척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뭘 느끼고 있는지조차 모르겠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어떤 손님을 걱정한 적이 있을까?

아니면 그냥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표정을 지은 걸까?

그 웃음은 나를 위한 거였을까 상대를 위한 거였을까?


나는 이제 공감이라는 말을 잘 믿지 않는다.

그 말이 너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고통에 "힘내세요"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쉽게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 수 있는지 알고 나서부터.


그래서 나는 말 대신 표정을 만든다.

진심은 없지만 진심 같아 보이는 얼굴.

나도 그 얼굴을 믿고 싶어서.

그게 내 생존 방식이었다.

공감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 만든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표정을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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