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정 버리시겠어요?” 누가 물어봐주면 좋겠다
나는 문득 멈춰섰다.
계산을 마치고 손님이 나간 뒤
습관처럼 영수증을 구겼다가 말았다.
그 안에 적힌 숫자를 보며
내가 오늘 받은 말, 건넨 말, 웃음, 표정들을 떠올려보려 했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 감정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감정이라는 게 정말 있었던 걸까.
예전에는 기분이 좋으면 웃었다.
슬프면 울었고 짜증 나면 얼굴이 굳었다.
지금은 아니다.
감정이 먼저 생기는 게 아니라 표정이 먼저다.
눈이 먼저 반응하고 입이 알아서 움직인다.
그 다음에야 마음이 따라온다.
그것도 따라오는지 흉내만 내는 건지 알 수 없다.
어느 날은 정말 피곤해서 표정을 놓친 적이 있었다.
눈빛이 멍하다고 무슨 일 있냐고 묻는 손님이 있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내가 지금 감정을 잃은 게 아니라,
감정을 잃지 않은 척하는 데 실패했구나.
나는 점점 나를 잊어간다.
기뻤던 순간들이 희미해지고
무서웠던 순간조차 반복되니 익숙해진다.
그래서 더 이상 감정이 내 것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가끔은 영수증처럼 감정을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불필요한 감정 정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누가 “봉투 필요하세요?” 하듯
“이 감정 남기시겠어요?” 하고 물어봐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아뇨, 버려주세요.”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감정이 남아 있는지조차 모르겠는 내가
웃고 있는 얼굴로 하루를 마친다.
진짜였던 건 무엇이고
내가 만든 건 또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 감정은 진짜였을까
그 질문 하나만 계속 머릿속을 떠돈다.
그리고 그 질문에는
오늘도 대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