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들으면 피곤해지는 사회

나는 공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by 후루꾸

그 손님은 매일 같은 시간에 왔다.

밤 11시 40분쯤 문이 조용히 열리고

목에 머플러를 감은 남자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었다.

지친 회사원 같기도 하고

야근하고 나온 대학원생 같기도 했다.

말수도 적었고 계산도 조용히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주 말했다.

“오늘은 좀 덜 아프네요.”

“간호사가 약을 바꿔줘서요.”

“어제는 손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그런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가 멈췄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는 듯 계산대를 내려다봤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힘드시겠네요.”


그가 대답했다.

“힘든 건 익숙해져요. 안 믿는 사람들이 더 힘들죠.”

그 말을 듣고 나는 그 사람을 더 보지 못했다.


눈을 피하고 손을 서둘러 움직이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감사합니다”만 반복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손님이 오는 시간이 되면 긴장했다.


혹시 또 오늘의 고통을 설명할까 봐.

그 앞에서 또 뭘 말해야 할지 몰라 멈출까 봐.

혹시 내가 믿지 못할까 봐.


그 사람은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아픔이 잘 보이지 않았다.

표정은 평온했고 말투도 담담했다.


나는 자꾸 그의 말보다 그의 표정이 더 신경 쓰였다.

공감하는 자세는 아니었다.


그날도 그는 말했다.

“오늘은 왼쪽 귀가 거의 안 들려요.”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감이란 건 뭘까.

그 사람이 아프다고 말했을 때

나는 정말 그 고통을 상상해보려 했을까.


아니면 그저 ‘이상한 손님’으로 분류하고

빨리 보내고 싶다는 생각부터 했던 건 아닐까.


사람들은 말한다.

“고통을 말해줘서 고맙다.”

하지만 막상 듣게 되면 불편해한다.


듣고 싶지 않은 고통도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나는 그 손님이 진짜 아픈지 지금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그가 매일 아프다고 말할 때마다

점점 더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무서운 건

공감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자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다.


그 손님은 오늘도 왔다.

그리고 오늘도 말했다.

“조금 낫긴 했어요.”


나는 웃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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