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는 말조차 증명해야 하는 시대
내가 일하는 편의점에서는
몸이 아프다고 말하는 손님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게 된다.
“두통약 어디 있어요?”
“속이 너무 안 좋아서요.”
그럴 땐 대개 약 매대를 가리키며 말한다.
“2번 선반 맨 위에 있습니다.”
그 이상은 묻지 않는다.
그 사람이 정말 아픈 건지
그저 기분이 그런 건지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한때는 그랬다.
“괜찮으세요?” 하고 물어보고
“앉아 계실래요?” 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던 날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대개 무시 혹은 “아니에요”라는 짧은 말뿐이었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이젠 아프다는 말에도 감흥이 없어졌다.
어느 날 어떤 손님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계산 좀 빨리 해주세요. 진짜 속이 너무 안 좋아서요.”
나는 웃으며 “네” 하고 대답했지만
사실 ‘아픈 거 맞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얼굴은 멀쩡했고 걸음도 빠른 편이었고
무엇보다
그 말이 너무 익숙했다.
고통이라는 건
보이지 않으면 없는 걸까.
겉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건 그냥 과장이거나 관심 끌기인 걸까.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판단해왔다.
그게 무섭다.
내가 누군가의 고통을 증명 가능한지 아닌지 따지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이.
생각해보면 나도 아프다.
매일 똑같은 일상속 그리고
이 무표정한 감정노동 속에서
나는 내 감정이 점점 무감각해지는 걸 느낀다.
그런데 그걸 아무도 보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도 말하지 않는다.
“저... 속이 안 좋아요.”
그 말 한마디에도 증명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안다.
사람들은 보이는 고통에만 반응한다.
피가 나거나 울거나 쓰러지거나 해야 겨우 움직인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친다.
나는 매일 그런 사람들을 본다.
그 중 하나가 나 자신이라는 사실도 자주 잊는다.
고통은 정말 증명되어야 할까.
아니면
“나는 아프다”라는 말만으로도
충분히 믿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너무 쉽게 눈을 돌리는 내가
오늘도 그 편의점 계산대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고통을 판단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게 가장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