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상관없었다.
나는 요즘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듣는 척은 하지만 진짜 듣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고 “네” 하고 반응하고
적당한 순간에 “힘드시겠어요”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대화는 그걸로 끝난다.
그게 편하다.
무엇보다 안전하다.
어떤 손님은 반복적으로 아프다고 말하고
어떤 손님은 누군가의 욕을 하고
어떤 손님은 오늘도 어딘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믿는 척하고, 듣는 척하고
그리고…
모르는 척한다.
정말 아픈 걸까?
정말로 그 사람이 지금 무너지기 직전일까?
사실 중요한 건 아니다.
내가 그걸 진심으로 믿는 순간부터
나는 책임질 수도 없는 감정에 발을 들이게 되니까.
그래서 나는 믿는 척만 한다.
“아, 그러시군요.”
“정말요?”
“아이구, 힘드시겠어요.”
익숙한 말들.
다 외운 듯한 감탄사.
그 말들에 감정은 없다.
감정이 있으면 힘드니까.
감정이 붙는 순간, 나는 피곤해지니까.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의 말을 정말로 ‘들어준’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진심보다 보여지는 답이 중요하다는 것.
말은 감정이 아니라 반응이라는 것.
그리고 사람은
그 반응이 익숙하면 진심이라 착각한다는 것.
나는 그 착각을 만든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식이니까.
하지만 가끔은 무섭다.
‘척’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진짜 감정을 느낄 기회조차 사라지는 건 아닐까?
오늘 어떤 손님이 말했다.
“여기 알바생 분은 항상 친절하시네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친절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 뿐인데.
척하는 일에 익숙해질수록
나는 나를 잘 모르게 된다.
믿는 척, 듣는 척, 모르는 척.
그 모든 척의 끝에서
나는 진짜 내 마음을 외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