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감정을 계산한다

영수증엔 감정이 없다

by 후루꾸

나는 오늘도 웃었다. 감정 없이.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웃었다.

그건 그냥 계산대에 서 있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누구든 그 자리에 서면 그렇게 웃게 된다.

웃지 않으면 이상해 보이니까.

괜히 뭐라 하는 사람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웃었다.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감정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간마다 교대 벨이 울리듯 손님이 들어왔다.

나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안녕하세요.”

“봉투 필요하세요?”

“영수증 버려드릴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감사합니다.”


그 말들 사이에 나의 감정은 거의 없었다.

처음엔 있었다.

정말로 있었다.


진심으로 사람을 반기고

말 한 마디에 반응하고

작은 친절에 고개를 숙이던 날들이 있었다.


그땐 웃는 게 쉬웠다.

그땐 ‘감정이 있는 인간’으로 일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웃는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웃음이 근육이란 걸 알게 된다.

웃는 데 감정은 필요 없다.


반사처럼 익힌 움직임이면 된다.

내 입꼬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쯤에서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걸 눈치챈 손님이 있었다.

“오늘은 표정이 좋으시네요.”

그 말에 나는 반응하지 못했다.


나는 오늘 기분이 좋았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실수한 모양이다.


내 기분은 점점 작아졌다.

말이 필요 없는 하루들이 이어졌고

내가 말하고 있는 건지

그냥 대본을 읽고 있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감정은 어디로 갔을까.

사람이 많았던 날이면

더 공허해졌다.


몸은 일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무 데도 없었다.


손님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고

나도 손님을 보지 않았다.

그저 상품과 돈과 영수증만 오갔다.


하루는 손님이 떠난 자리에 영수증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걸 줍는데 이상하게 속이 이상했다.


나는 오늘도 수십 장의 영수증을 버렸고

그 안에 내 말, 내 표정, 내 하루가 담겨 있었다.


그날 퇴근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일 감정을 계산하고 있구나.’

이게 정말 내가 살아 있는 방식일까?

아니면 감정이 남아 있는 척하는 것일까?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오늘 하루 몇 번이나 웃었는지 세어보려 했다.

하지만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웃었는지는 기억나는데

그때 무슨 감정이 있었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더 슬펐다.

웃음이 기억에 남지 않는 하루.

감정이 사라진 얼굴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

그게 지금 내 일상이었다.


오늘의 감정 정산: 0원

내일도 이 계산을 계속합니다. 계속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