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아침 8시까지 출근,
머리는 반쯤 젖어 있고
마음은 이미 하루치를 다 써버린 느낌으로
나는 출근카드를 찍는다.
정희다.
간호사로 시작했고, 지금은 상근직 행정간호사다.
3교대를 끝낸 건 오래전 일이지만
몸이 편해진 건 아니었다.
쉬는 법을 모르는 근무표를
스스로에게 새겨 넣은 지 오래다.
점심은 식은 도시락 두 숟갈로 때우고
회의가 끝나면 전화가 오고
전화를 끊으면 보고서가 덮친다.
숨 쉴 틈 없이
회의하고, 보고하고, 정리하고 민원받고 나면
정희는 남지 않는다.
퇴근하면 진짜 야근이 시작됐다.
퇴근 후 어린이집에 들러
세아, 세진, 세미
아이 셋을 한 줄로 세워 귀가한다.
작고 피곤한 아이 셋은 말이 많다.
“엄마! 배고파!”
“지민이가 내 장난감 만졌어!”
“지안이는 오늘 나랑 안 놀았어…”
가방을 내려놓을 틈도 없이
나는 부엌으로 향한다.
밥을 짓고, 옷을 갈아입히고, 씻기고,
책을 읽고, 머리를 빗고,
싸움을 말리고, 수학 문제집을 본다.
그러다 어느샌가
아이들이 내 품에서 잠이 들고
그제야 안다.
나도 함께 잠들어 있었다는 걸.
남편 태수는 늘 바빴다.
“오늘은 중요한 회식이 있어서.”
“오늘은 거래처랑 저녁이 있어서…”
“팀장님이 꼭 오라고 하셔서…”
그의 회식은 늘 ‘조금만 더’에서
대부분 새벽 귀가로 이어졌다.
그래도 그는 가정적인 남자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놀아주고, 청소도 하고
가끔은 아침에 라면도 끓여준다.
하지만 평일 밤,
이 집의 아이 셋과 엄마 역할은 오롯이 내 몱이다.
큰딸 세아는 말이 없는 아이다.
조용히 책을 읽고,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는 아이.
말이 없다.
느낌도 많지 않은 듯하지만
문득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엄마는 왜 요즘 웃지 않아?”
그 한 마디가
내 속을 울린다.
둘째 세진은 감성 덩어리다.
웃는 얼굴이 예쁘고
늘 사랑받고 싶어 하고,
늘 확인하고 싶어 한다.
“엄마, 나 이쁘지? 엄마는 누구 제일 좋아해?”
한 번은 비 오는 날,
약속했던 학예회에 가지 못했더니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감싸며 말했다.
“엄마가 자꾸 약속 못 지켜서…
세진이 마음이 비처럼 찢어졌어…”
그 말에 나도 찢어졌다.
일곱 살짜리 입에서 나오는
그 표현이 너무 어른스러워서
그 순간,
나는 아이에게 배우고 있었다.
막내 세미는 사랑 그 자체다.
우주 최강 귀요미.
잘 먹고, 잘 웃고,
모든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거울 앞에 앉아
“엄마처럼 예뻐지고 싶어.”
그 말에 문득 깨달았다.
나는 얼마나 오래
내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았는지를.
거울은 그냥
시간표를 붙여두는 판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어릴 적,
그 사랑이 늘 그리웠으니까.
내 아이들만은
‘결핍’이 없었으면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랑을 줄수록
나는 점점 텅 비어가는 사람이 되어갔다.
매일 밤,
소리를 지른 날이면
밤마다 후회했고,
약속을 못 지킨 날이면
죄책감이 짙게 내려앉았다.
“오늘도 미안해.”
그 말만 쌓여갔다.
나한테, 아이한테,
그리고 사라져가는 정희에게.
48살.
감당 못할 하혈.
응급실.
자궁근종과 내막증.
결국 자궁과 난소를 적출했고
호르몬은 몸을 떠났다.
몸은 무거웠고,
밤엔 이명과 불면, 낮엔 무기력.
눈을 뜨는 일조차 버거웠다.
병원 침대에 누워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아팠을까?”
답은 간단했다.
내 몸이 오래전부터 나를 부르고 있었던 거다.
“이제 그만 좀 쉬어.”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고
조금씩 몸이 회복되며
나는 거울 앞에 섰다.
하지만 그곳엔
‘엄마’, ‘직장인’, ‘아줌마’라는 표식만 붙어 있었고
정작 ‘정희’는 보이지 않았다.
출근 첫날,
가슴이 무거웠다.
담당의사는 “무리하지 마세요” 했지만
나는 ‘쉴 틈이 없다’는 말을
습관처럼 되뇌었다.
그날 밤
큰딸 세아가 다시 말했다.
“엄마 요즘, 잘 안 웃는 것 같아.”
나는 순간,
웃음이 언제 내 얼굴에서 사라졌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나는 너무 많은 나를 놓아버렸다는 걸.
사라진 줄 알았던 나는
그때부터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카페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며 보내는 두 시간이
예전 같으면 ‘게으름’ 같았겠지만
지금은 내 안의 정희를 돌아보는 가장 조용한 기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