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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Dec 29. 2022

14. 디저트를 닮은 지층

트렌브랜_내가 만드는 트렌드 브랜드 공식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으로 재개발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비좁게 주변을 채우고 있던 건물들이 한꺼번에 철거되었습니다. 이로써 숨통이 트이며 그동안 가려져 보지 못했던 주변의 경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곳에 땅파기 공사를 할 때는 백제의 유물이 발견되면서 6개월간 공사를 중지한다는 안내문이 붙기도 했습니다. 분주하고 활력 있게 움직이던 공사장이 멈추면서 풀로 무성하던 공사장 주변이 이젠 하얗게 눈으로 쌓인 풍경으로 바뀌었습니다. 근처에 백제 유적인 모락산성이 있긴 하지만 이곳에 백제인이 살았다는데 모두들 신기해 했습니다. 과거 다가구 주택을 지을 때는 나오지 않았던 유적이 아파트 공사를 위해 지하 3층 깊이로 새로 땅을 파면서 발견된 거라 더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유물이 발견된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상상도 하지 못한 깊이에 모두가 많이 놀랐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잘 알고 있지만 이것을 겉모습 정도의 변화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움직이거나 옮길 수 없는 부동의 속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 부동산이지만 이 마저도 혼돈스럽게 됩니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땅 위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초원에 해마다 풀이 새로 자라나며 경치가 바뀌듯 우리가 사는 모습과 함께 살고 있는 땅의 모습도 계속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지층이 되어 쌓여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빌딩과도 같이 수많은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이렇게 쌓인 지층 위에 살고 있습니다. 최초의 인류가 살았다는 아프리카 사막의 동굴은 빛조차 없어 긴 시간에도 어떠한 변화도 없을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곳에서 조차 그들의 모습은 무려 2미터가 넘는 깊이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태초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동굴 속에서 조차 땅밑으로는 시간이 층을 이루고 소용돌이쳐 왔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지구 표면에서 가장 숨겨진 곳이라 할 수 있는 동굴이 이 정도로 많이 변하는데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의 많은 것들은 얼마나 변했을지 상상도 못할 것 같습니다. 마치 만년설이 쌓여가듯 지층은 과거를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지층은 그 속에 수많은 과정들과 변화들을 고스란히 담으면서 우리의 과거적 모습을 들추어 볼 수 있게 해줍니다. 만약 지층에도 성격이 있다면 아주 내성적일 것 같습니다. 과묵하기 때문에 좀처럼 존재도 깊이도 가늠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지층은 층층마다 다른 두께와 내용들로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층의 아주 작은 부분을 그것도 아주 가끔씩 들여다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성적인 성격은 우리가 지층을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바라보게 해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지층은 시간이 지나야 속내를 드러내는 속 깊은 친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호미닌(hominin)이라는 새로운 종의 인간을 지층에서 발견했을 때도 이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 존재를 발견하고 이를 증명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1856년 처음 그 존재가 발견되었을 때는 질병이나 기형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질병이나 기형으로 보지 않고 지층을 계속해서 대하면서 처음에는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유럽 전역에서 그들의 흔적이 발견되면서 인류의 조상인 호미닌의 존재가 더 이상 가설이 아닌 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지층을 보고 있으면 아이스크림이나 조각 케이크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지층은 레스토랑 접시 위에 놓인 디저트와 같이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포크를 가지고 층층이 쌓인 서로 다른 재료와 칼라를 조금씩 떼어내고 있으면 마치 가설을 증명하려는 역사학자가 된 듯한 기분에 매혹되기도 합니다. 혹시나 그 속에서 예상치도 못한 보석과 닮은 가니쉬라도 발견하게 되면 그야말로 미지의 문명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기분 또한 들뜨고 신이 납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 그리고 일상 어디에도 단조롭거나 심심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작은 일상에서도 우리는 재미를 찾고 즐기려 하는 것을 보면 이것에 더 강한 확인을 느낍니다. 우리는 어떠한 단조로움도 무조건의 지루함도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 같습니다.


지층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 때 속내를 조금씩 드러내며 속 깊은 친구의 모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 www.rd.com/wp-content/uploads/2020/04/GettyImages-1145272404-scaled.jpg?w=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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