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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Jan 08. 2023

16. 교회탑을 닮은 등대

트렌브랜_내가 만드는 트렌드 브랜드 공식

  오래된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교회탑은 도시 여행에서 빼놓지 않고 찾는 명소라 할 수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교회 답사를 마치고 뒤이어 오르는 교회탑은 그 설렘도 잠시 길게 줄지어 늘어선 관람자들 틈에 끼어 한계와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여기서 한계의 끝을 경험할 때쯤 비로소 교회탑의 전망대로 가는 입구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뻥 뚫린 탑 위의 세상을 대면하고자 방문자들은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인과도 같은 존재로 높게 솟아 있는 교회탑은 하늘과 맞닿은 도시의 전경을 넋 놓고 바라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고딕 건물의 시청이며 사각으로 자리잡은 광장을 순서대로 찾아가며 둘러봅니다. 그리고, 모든 구경을 마치고 교회탑을 내려 갈 때는 재촉하며 오르던 때와 달리 미련이 남은 듯 발걸음은 느려지고 여기저기에 몸과 마음이 붙들리게 됩니다. 


  우리가 대할 수 있는 오래된 것들은 그 시간의 길이만큼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이겨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평범한 것이었기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이고 혁신이었기에 오랫동안 유지하고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오래된 것이 아름다운데는 오랫동안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시의 교회탑을 바다로 옮기면 이것은 등대가 되어 희망을 줍니다. 등대는 땅 끝자락에 발을 붙이고는 배들이 꿈을 품고 나아갈 수 있게 둥근 희망을 빛을 비춥니다. 우리가 바닷가를 드라이브하거나 섬으로 여행을 가게 되면 등대를 만나게 되는데 등대는 칠해진 색상만큼이나 강렬함을 발산합니다. 외지고 험준한 자연에 콘크리트로 뿌리를 내리고 단단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뿌듯함이 느껴져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것은 등대가 인공적인 것임에도 따뜻함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철조망이나 담벼락은 서먹한 기운을 풍기지만 등대는 따뜻하게 불을 준비해 놓고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체스말과 닮은 등대는 주변을 압도하는 위엄이 느껴집니다. 내게는 이 등대가 마치 아테네 언덕 위에 서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처럼 느껴 지기도 합니다. 등대가 서 있는 지형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합쳐지면서 등대의 카리스마는 그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체스말과 닮은 등대도 멋있지만 사실 나는 미국식 등대라 할 수 있는 주택 모양의 등대도 좋아합니다. 미국식 등대는 평범해 보이는 가정집의 지붕 위에다 등대를 붙여 놓은 모습입니다. 이것은 등대가 아니라 집 같아 보이는 게 좋습니다. 더 포근해 보이고 인간적인 면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가 나오기 위해서는 이곳을 지키고 생활해야 하는 등대지기를 배려하는 깊은 마음이 담겨 있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주택을 닮은 미국식 등대는 좀 더 따뜻하고 친근한 빛과 소리를 낼 것 같습니다. 


  등대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등대의 생일이 건축물의 완공일이 아닌 점등일을 기준으로 하는데 있습니다. 최초로 불을 밝힌 날이 등대의 출생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등대는 그 크기가 아닌 빛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인 등질로 점수를 매긴다고 합니다. 이 이유가 등대를 따뜻하게 살아있다고 믿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탑과 등대의 차이를 이야기하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아마 절대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차이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 한가운데 위치해 절대적인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교회탑이라고 한다면, 땅끝자락인 절벽에 매달려서 외로운 인간미를 풍기는 게 등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등대가 어두운 밤바다와 태풍의 위협을 빛으로 맞서며 감내하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도 많이 닮은 듯합니다. 망망대해를 향한 등대와 같이 우리의 모습 또한 막막해 보이는 세상을 향해 빛과 온기를 발산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덴마크인들이 나치 친위대의 유대 검거에 맞선 것도 중공군의 반격에 흥남에서 피난민들이 대면했던 바다에는 이러한 인간적인 빛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등대는 인간의 마음으로 바다 위에 생명과도 같은 빛의 다리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 알래스카에서 가장 오래된 엘드레드 록 등대(Eldred Rock Lighthouse)는 주택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등대가 팔각정을 닮아 보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s:// www. peninsulaclarion.com/news/local-volunteers-work-to-restore-preserve-and-share-historic-light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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