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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Jan 26. 2023

20. 모양과 그 쓸모는 다르다

트렌브랜_내가 만드는 트렌드 브랜드 공식

  팬션으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새벽보다 일찍 잠에서 깼습니다. 다시 잠을 자지 못하고 멀뚱히 누워 전날 있었던 일들을 회상해 봅니다. 그리고는 일어나 호기심에 블라인드 너머에 있는 바깥을 내다봅니다. 평소 같으면 거실로 나가 불을 켜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이것저것을 했겠지만, 오늘은 문이 없는 거실과 안방을 가족들이 나누어 쓰게 되면서 불편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잠시 현관 근처에 놓아둔 가방을 살피려다 센서 등이 환하게 켜지는 바람에 이 마저도 포기하고 미안한 마음에 돌아와 다시 누웠습니다. 머리맡 조용하던 온풍기가 소음을 키우듯 머리 속 또한 무언가를 찾느라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스마트폰을 열어 살펴도 보고 낮 동안 찍은 사진들을 돌려도 보지만 이 또한 시시하게 끝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누워 있으려니 적막 속에 잠들어 있던 추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볼펜에 관한 기억으로 펜 앞쪽에 전구가 달려 있어 밤에 글 쓰기가 가능합니다. 나는 이걸 신문 광고에서 본적이 있지만 직접 써보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이 기억을 더듬어 이것을 돌려가며 깊이 있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쓸모 없음이었습니다. 어두운 밤 펜을 꺼내 글을 쓸 일은 분명 있겠지만, 나의 경우 지금 잠깐 이 생각을 한 게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볼펜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소구점이 있는데 이 쓸까말까한 것에 집착하며 들고 다녀야 한다면 필요가 불편이 될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펜을 켠다고 집중력이나 창작력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면 불 꺼진 곳을 찾아 쓰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것의 용도는 분명 급히 드는 생각이나 꼭 필요한 기록에 어울리지만 스마트폰이 모든 일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것의 쓸모는 적은 게 사실입니다. 결국 물건은 기능이 아닌 그것의 쓸모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필요가 기능을 만들지만 물건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쓸모가 있어야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철원으로 떠난 여행에서 한탄강 물윗길을 걸었는데 여기서 철새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포유류들이 낼 법한 짧고 날카로운 소리의 정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 에야 비로소 철새 떼가 나르며 내는 소리임을 알고는 자연스레 소리에 맞춰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그런데, 철새를 대할 때면 매번 드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철새의 모양으로 그 생김새로만 봐서는 영 잘 날 것 같지 않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철새의 목은 너무 길어 보이는데다 그들의 날개는 앞쪽이 아닌 몸통의 뒤쪽편에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눈에는 이게 불편하고 힘들어 보이는데, 이런 모양으로 먼 거리를 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모양과 그 쓸모는 다른 것 같습니다. 


  모든 상상에는 예시가 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합니다. 인간이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할 수 있게 된 데는 새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무엇도 날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하늘을 나는 상상은 물론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가 있어 인간은 상상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새의 날개를 인간의 몸에 붙고 사물에 올려 놓으며 아름다운 신화를 탄생시켰고 비행기라는 새로운 탈 것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루브르의 상징과도 같은 승리의 여신도 킬데빌 언덕 위를 비행한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역시도 새의 날개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파티에 새의 날개를 달 수는 있어도 모양만으로 우리를 하늘 위로 올려 놓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모양으로는 비행기 역시 하늘을 나는 데는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새의 날개를 우리의 몸이나 붙이거나 새의 날개를 물체에 붙이는 것으로 모양이 만들어지고 쓸모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 모방의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새의 날개라는 형상과 프레임에서 벗어나 창의의 단계에 들어설 수 있게 됩니다. 깃털이 금속으로 바뀌고, 날개의 모양까지 사라진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엔 눈에 보일 만큼 가까웠던 목표가 대기권을 넘어 달과 화성 그리고 우주의 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모양이 아니라 쓸모로 대상을 바라 본다면 우리는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철새들은 그 생김새만 봐서는 잘 날 것 같지 않게 생겼지만 먼 거리를 날 수 있습니다. 모양과 그 쓸모는 다른 것 같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 www.panfilophoto. com/martinmere-lancashire/imag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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