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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Feb 13. 2023

02. 꿈이 나를 놀래 켰다

[에세이] 그때 꿈을, 다시 꾸었다

[에세이] 그때 꿈을, 다시 꾸었다

“인간의 삶은 여인숙이다. 매일 아침 새로운 여행자가 찾아온다. 

기쁨, 슬픔, 비열함 등등. 매순간의 경험은 예기치 못한 방문자의 모습이다.

이들 모두를 환영하고 환대하라. 어두운 생각, 수치스러움, 원한.

이들 모두를 문 앞에서 웃음으로 환대하고 맞이하고 안으로 초대하라.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감사하라. 이들은 모두 영원으로 온 안내자들이다.” – 타라 브랙 (Tars Brach)

 

  꿈을 꾸었다. 가끔 꾸는 꿈을 어제 다시 꾸었다. 나는 시험 문제를 풀지 못해 마음 졸이곤 하는데, 나중에 이게 꿈이라는 걸 알고 비로소 안도하게 된다. 어제는 종강을 하루 남기고 제출해야 할 과제를 잃어버리고 찾지 못하는 꿈이었다. 학기를 막 시작했을 때 그렸던 그림만 몇 장 보일 뿐 나머지 중요한 그림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그리기에도 과제의 양은 너무 많았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초조해하다 꿈에서 깨었다. 난 왜 이런 꿈을 꾸는 걸까? 다른 사람들도 이런 꿈을 똑같이 꾸는 것일까? 만약 과거에 대한 기억이 이 꿈을 꾸게 한다면 다른 기억도 많은데 왜 이 꿈을 계속 꾸는지 모르겠다.


  지금 막 드는 생각이지만 만약 이 꿈을 현실에서 마주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현실에서는 초조해하거나 미리 포기하기 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것 같다. 새로 그림을 그리는 게 최선일 것 같다. 또 모르지 않은가? 교수님이 쿨 하게 내게 시간을 더 줄지 또 사정이 생겨 종강이 연기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나는 물고기에 관한 꿈도 가끔 꾼다. 내가 오래전 취미로 물고기를 길렀는데 이것을 꿈으로 꾸는 것이다. 아이가 크고 이사를 하면서 더는 물고기를 기르지 않게 되었지만 꿈에서 나는 집안에 수족관이 오랫동안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마치 영화 속에서 인디아나 존스가 고대 유물을 발견하듯 상상도 못한 수족관이 눈에만 보이지 않았을 뿐 계속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 존재를 모르고 방치하면서 수족관은 이끼로 가득하고 어두웠지만 물고기는 크게 자라 있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에는 공통된 분모들이 있다. 어린시절의 기억은 특히 더 기억에 남는다. 그때의 일들은 하나하나가 우리의 혈관을 타고 몸의 모든 근육과 세포가 느끼며 기억할 만큼 아주아주 선명하다. 우리는 소시지 반찬을 매일 먹고 싶어 했고 선생님, 과학자라는 공통된 장래희망을 가졌다. 시간이 벌써 많이 지났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그때를 기억하고 몸이 반응하기도 한다.


  각각이 가진 기억은 나무의 생긴 모양같이 서로 다 다르다. 대나무처럼 길쭉한 기억도 있고, 자작나무처럼 하얗게 생긴 기억이 있는가 하면, 사시나무처럼 꿈틀대는 기억도 있다. 이런 기억은 우리들 주변을 맴돌다 불쑥 찾아와 우리를 놀래 키곤 한다. 이것은 좋은 기억일수도 있지만 그 반쪽을 아쉬움과 슬픔이 차지하기도 한다. 마치 관객들로 가득 찬 객석을 바라보며 공연을 펼쳐야 할 때도 있지만 나의 무대가 텅 빌 수도 있는 것처럼. 그리고 집을 나설 때는 태양이 따스하게 비쳐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가 오후에는 이것이 비바람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겨울에 눈이 내리면 키우던 강아지의 발이 시릴까 걱정되어 품에다 꼭 안고 다녔던 소중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기억과 함께 그 추운 겨울에 그가 홀로 쓸쓸히 죽어가는 모습을 울면서 지켜봐야 했다. 시골집에 살다 새로 양옥집을 지어 넓고 내방 있는 곳으로 이사했던 설렜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시골의 텅 빈 집은 또 내게 심심하고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게는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존경하는 분이 계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경찰에 도움을 받아 수소문을 했지만 그분이 돌아가신 것 같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어야 했다. 이런 이유들이 내가 동물을 좋아하지만 기르고 만지는 걸 피하게 했다. 내가 시골에서 자랐지만 고향에 집을 짓고 살겠다는 생각을 따로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지인에게도 연락하는데 부담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이렇듯 세상은 친절하게 느껴지다 가도 서먹서먹한 기분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고 또 이것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억은 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좋았던 추억이 시간이 가면서 아쉬움으로 변하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반대로 그 때는 아쉽던 것이 지금은 고마운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떤 기억들은 영원히 즉 원본 그대로로 기억되면 좋겠다. 처음의 부족한 것은 부족한대로 그때의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말이다. 모든 것이 좋고 아름답게 기억되면 좋겠지만 그래도 어떤 기억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그런 존재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가물거리고 덧없이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존재하는 한 어떤 기억은 빛은 바래도 원본의 모습이면 좋겠다. 


> 이미지 출처: https:// www.ad.nl/buitenland/oorzaak-van-smogramp-londen-in-1952-bekend~a4a20697/6057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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