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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Jul 06. 2023

06. 여러 기억들이 뭉쳐져 하나의 추억이 된다

[에세이] 우연히 나란히 여행하다

이번에 서울을 선배와 여행하면서 트렌드에 대한 공부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디자인이 직업이 되면서 과장 같지만 나는 모든 것을 트렌드와 결부시키고 새로운 것을 찾는데 노력을 기울였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인 관광객들을 대하면서 그들이 추구하고 즐기는 트렌드가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지금 우리에게 핫한 것들을 찾고 즐기기 보다 일본에 없는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찾아 다니며 즐거워했다. 우리에게는 소소하게 보이는 것들을 찾아 그들은 시장이며 골목을 누볐고 그러다 그들에게 없는 문화를 찾으면 즐거워했다.


그들을 따라 들어간 광장시장에서 우리는 처음 보는 재미난 광경을 찾을 수 있었다. 인쇄소 간판들로 가득한 좁은 인쇄소 골목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젊은 손님들로 붐볐다. 그곳은 인쇄소 간판들이 줄지어 있었고 건물도 옛날 그대로였고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만한 식당이나 술집임을 알리는 간판은 어디에도 붙어있지 않았다. 샤시 창문과 출입구의 글자 하나도 바뀌지 않고 옛날 인쇄소 때의 모습을 그대로 두고 장사를 했다. 가게의 바깥은 그대로 두고 가게 안쪽만 필요에 맞게 바꾸어 장사를 했는데 가게마다 인테리어에서 자유가 느껴졌다. 옛모습을 그대로 지킨 곳이 있는가 하면 모던하게 탈바꿈한 곳도 있었다. 이들처럼 과거의 기억을 남기고 이노베이션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옛날 간판들을 보고 있으니 영화관이 생각 났다. 그때의 영화관에는 참으로 많은 볼거리와 스토리가 있었다. 새로운 영화가 개봉되는 날이면 대형 간판에 영화 포스터를 그려 극장 바깥에 바꿔 붙였는데 영화보다 이것이 우리를 더 설레게 했다. 손으로 그린 간판은 영화 속 하이라이트를 배경으로 주인공 맨 앞에 놓는 구도였다. 주인공의 표정까지 극적으로 표현해 내면서 이것을 그린 작가의 취향과 성격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영화를 보고 영화관 비상구를 통해 나오면서 수북이 쌓여 있는 간판들 너머로 다음 개봉작을 준비하는 화가의 모습도 볼 수가 있었다. 사실 이렇게 큰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물감과 컬러들이 필요할 것 같지만 서너 개의 페인트통을 바닥에 놓고 작업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면 힘이 빠지고 실망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분명 초라한 면이 있긴 했지만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낭만으로 이것을 바라보곤 했다. 옛날부터 예술가의 삶이 어두운 곳에서 시작하고 꿈꾸지 않았던가? 나는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을 보고 있으면 예술가의 창작열이 느껴진다. 마치 화가인 샤갈의 삶과 그림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거대한 영화관의 간판은 이름없는 화가의 갤러리였고 또 우리는 이들의 작품을 거리에서 낭만을 느끼며 감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화가의 강한 붓 터치로 그려진 배우의 얼굴을 실제 영화의 모습보다 생생하게 기억하기도 한다.


주말이면 가끔 종로에서 친구들과 만나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나는 영화관들이 가졌던 개성과 서울극장이며 단성사, 피카디리극장으로 불리던 그때의 이름이 좋다. 오래된 것들에는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영화관 앞 광장은 부담 없이 친구를 기다리기에 좋았고 노점상에서 펼쳐 놓고 즉석으로 만들어 파는 것도 또 이것을 사서 자유롭게 영화관 안으로 들고 들어가는 것도 좋았다. 정감이 있었고 돌이켜 보면 그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따로 존재했던 것 같다. 그때는 규모는 작았지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 존재했고 가게 이름만 가지고 찾아가면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기억들이 나중에 추억으로 남는 것 같다. 그리고 기억들은 한가지 한가지가 따로 기억되고 추억되는 것이 아닌 여러 기억들이 뭉쳐져 하나의 좋은 추억이 되는 것 같다.


> 이미지 출처: https://pinkbunny.tistory.com/entry/아듀-서울극장-폐관-세대를-걸친-추억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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