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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Jul 01. 2023

05. 다른 장소 같은 기분에 취하다

[에세이] 우연히 나란히 여행하다

나의 계획은 이랬다. 이번 여행지가 서울이기에 한국식으로 즐기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예전 신주쿠의 여행을 회상하며 서울에서 일본식으로 즐기고 추억하는 것 역시 재미있는 계획이 분명하다. 그리고 선배와 내가 신주쿠에 있는 아자카야에서 늦게까지 긴 얘기를 나눴던 것처럼 이번에는 한국식으로 북촌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았다. 한옥의 처마가 내다보이는 곳에 앉아 도시에서의 밤을 즐기며 삼합으로 차려진 막걸리를 맛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냥 이곳에서는 무엇을 해도 다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런데 선배가 먼저 ‘우리 우선 그냥 걷자’고 제안하면서 여행이 더 재미있게 바뀌었다. 명동역에 내린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무작정 따라 가기로 하고 이 대열에 합류해 같이 걸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 우리가 막연하게 소망하던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다. 우리가 지하철에서 내려 대열에 합류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들이 일본 관광객들이었다. 이렇게 그들과 같이 걷다 보니 우리가 마치 일본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들이 대부분 삼대로 구성된 가족들로 짝을 이루면서 일본 깊숙이 파고 들어간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실제로 우리가 일본을 가기 위해서는 반나절 가까운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공항 리무진과 공항 체크인 등 수많은 절차를 걸쳐야 하는 것을 불과 한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해낼 수 있었다. 괜한 성취감이 느껴졌다.


선배와 나는 서울을 여행하는 일본 관광객의 모습으로 명동의 골목을 걸었다. 이렇게 걸으니 정말이지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배역이 바뀐 듯 설레었고 타임리프를 하여 신주쿠로 이동한 듯했다. 우리는 그들을 따라 사보이 호텔로 걸어 갔다. 선배를 통해 사보이 호텔이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명동의 랜드마크로 지어졌고 여기서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가 배출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우리가 그들을 따라 걷지 않았다면 가보지 못했을 장소를 운 좋게 찾을 수 있었다. 한때 명동을 대표하던 곳을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행운까지 얻으면서 우리의 서울 여행 첫날을 재미와 감탄으로 채울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또 다른 무리의 일본 관광객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우연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선배와 나의 대학 생활을 기억나게 하는 공통분모였다. 우리는 을지로의 골목을 향해 걸었는데 그곳은 우리가 대학시절 디자인 과제물을 만들기 위해 이곳의 인쇄소와 아크릴을 파는 가게들을 수시로 들락거렸었다. 오랜만에 다시 왔지만 다행히도 그곳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넘어 즐거웠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번 여행에서 대학시절을 추억하거나 이곳이 옛날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우리는 서울 여행에서의 첫 끼니로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작고 낡고 소박한 곳을 찾았다. 그렇게 우리는 인쇄소와 가까운 작은 선술집을 찾아 들어가 연탄구이에 소주를 놓고 간소하면서도 벅찬 기분을 맛보았다. 가게 안은 테이블 사이를 지나 다니기 힘들 정도로 장소가 비좁아 우리는 먼저 온 손님들과 어깨를 붙이고 앉아야 했다. 그러나 처음의 불편함도 금세 사라졌다. 우리가 이곳을 찾아 들어오게 된데는 옛날에 먹었던 연탄구이가 생각난 것도 있지만 우리의 마음을 끈 것은 사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오래된 샤시문이었다. 과거 알루미늄 샤시문을 열고 들어갔던 인쇄소와 아크릴집이 그리워서 였다. 저녁이 되면서 가게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고 문이 열렸다 하더라도 추억을 느껴 보겠다며 내 맘대로 열고 들어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찾아 대안으로 들어간 곳이 이곳의 오래된 선술집이었다.


그리고 이 선택 역시 잘한 선택이 되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주 재미있는 우연과 다시 마주쳤다. 우리가 그곳에서 어깨를 맞대고 앉았던 손님이 대학 초년생들로 그들을 보고 있으니 꼭 우리의 옛날 모습을 보는 듯했다. 우연 치고는 고향까지도 같음을 알고 우리 둘은 놀라움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서로 다른 대학을 다니며 시간을 내어 만난 듯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엔 한껏 신이나 있었다. 우리도 그들처럼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하며 서로의 잔을 비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웃으며 서로에게 되뇌었다.


> 이미지 출처 : https:// photohistory.tistory.com/19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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