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포도농사의 속 이야기

[에세이] 들풀언덕 _ 부모와 살던 집을 기억으로 남기며

by dkb 하우스

위암의 치료 시기를 놓쳐 손도 못쓰는 상황이 되진 않을까 걱정하던 가족들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찾아왔습니다. 서울 병원에서 진료와 검사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우려와 걱정이 희망으로 바뀐 것입니다. 검사 결과 암은 초기 단계였으며 암 또한 빠르게 진행되지 않아 다행히 진피층까지 암이 깊이 침투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으로 아버지는 가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복강내시경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빠르게 회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몇 주가 지나 가족들은 예약한 날짜에 맞춰 수술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습니다. 수술 결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암 조직은 완전히 제거되었고 림프구로의 전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암이라는 무서운 존재에 대해서는 보다 확실한 대비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재발의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아버지는 복강경 수술로 위의 일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다시 받았습니다. 코로나19는 병원의 생태계를 많이 바꿔 놓았습니다. 수술의 절차가 복잡해진 것 외에도 가족들의 자유로운 면회와 간병이 금지되면서 변화된 환경에 불편함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명으로 제한된 면회를 해야 했고 병원에서 허락 받은 곳의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를 챙기고 확인하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2020년 초 건강검진으로 시작된 진료는 여름이 다되어서야 모든 치료를 마치고 퇴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병원을 오갔고, 검사와 수술에 초조해 하며, 결과에 안도하고 기뻐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긴 시간동안 제일 마음이 편치 않았을 사람은 어머니였습니다. 막상 아버지가 입원하고 수술을 할 때도 같이 있지 못하고 어머니는 농사일을 하느라 멀리서 그 시간을 묵묵히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시간에 비례해서 정직하게 결과로 돌아오는 게 농사이긴 하지만 한번 쉬면 다음 일을 못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쉬지 못하는 것이 농사일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도 없는 것 또한 농사일인 것입니다. 이 시기는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각자의 공백에 아쉬워하고 미안해 했을 것입니다.


우리 시골은 내가 어릴 때는 논농사만 짓던 마을이었습니다. 봄이면 집집이 돌아가며 모내기를 하고 가을이면 수확한 벼를 매상을 하느라 동네가 분주했던 기억이 생생히 납니다. 그런데, 마을 근처 산 아래까지 펼쳐진 넓은 평야의 논들이 조금씩 포도밭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은 내가 중학생 무렵이었습니다. 지금은 마을 전체가 포도 농사를 지을 정도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시골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 긴 시간만큼 포도의 품종도 변화했는데 처음에는 세레단으로 시작해서 캠벨, 거봉으로 바뀌더니 지금은 자옥이를 거쳐 샤인 머스킷이 대부분의 밭을 채우고 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시기를 두고 짓던 농사일도 이젠 소득이 높은 시설재배인 비닐하우스로 바뀌면서 일년 농사가 되었습니다.


사시사철을 농사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맘 편히 쉬기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부모님의 연세가 많아지면서 병원을 찾는 횟수도 늘어나고 수술까지 여러 번 하게 되면서 농사에 대한 부담감 또한 많이 커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새 품종인 샤인 머스킷을 제대로 수확해 보고 싶다며 얼마전 밭을 새로 바꾸는 과감한 투자를 했습니다. 새로 심은 포도밭에 애착이 커지면서 농사일을 그만둔다는 것도 밭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가지고 있는 밭들 중 하나만이라도 정리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설득해 보았지만 이 또한 부모님 에게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밭을 팔까 하고 운을 띄우면 어머니가 반대를 했고, 다시 어머니가 이야기 하면 이번에는 아버지가 거절하기를 반복하면서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만족할 만한 수확을 거두게 되면서 밭을 파는 것으로 두 분이 의견을 모았습니다. 처음엔 밭을 다 팔기로하고 매매에 나섰지만 막상 새로운 임자가 나타났을 때는 밭 하나는 남기고 반만 정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년엔 포도를 제값 받을 수 있다며, 땅값이 더 오를 것이라며 아버지는 이야기를 돌려서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거의 평생을 같이 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려오던 정든 터전을 한번에 포기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