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그해의 시작에는 신년 운세가 있었다

[에세이] 들풀언덕 _ 부모와 살던 집을 기억으로 남기며

by dkb 하우스

집집마다 새해에 하는 일들이 서로 다르겠지만, 우리집은 신년이면 의식을 행하듯 철학관에 들러 신년 운세를 봅니다. 우리집이 이렇게 하는 데는 혹시나 있을 위험을 피하고 싶은 어머니의 바램이 담겨있습니다. 아버지가 농사 일과 건축 일을 병행하면서 여러 사고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것이 신년 운세였습니다. ‘요즘 시대에 미신 같은 것을 믿느냐!’며 반대했던 우리지만 요즘은 새해 때면 어머니께 언제 가는지 결과는 어떤지 궁금해 합니다. 어머니가 달라진 게 있다면 가족의 결혼으로 구성원이 늘어나면서 이름과 생년월일을 종이에 꼬박 적어 운세를 보러 가고 있습니다.


신년운세는 마치 우리의 인생이 누가 설정해 놓은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움직이기라도 하듯 설명하기 힘든 신기한 일들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위험한 사고를 피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머니가 신년 운세를 보시고 몇 주가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가족들이 주의할 것들에 대해서는 여러 번 당부를 하면서도 정작 부모님 본인들은 괜찮다고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평소와 다르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한 것입니다. 긴 한숨 뒤로 터져 나온 말은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신년 운세를 보러 갔을 때 철학관에서 빨리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라는 말에 어머니는 가을에 해오던 건강검진을 연초로 당겨 서둘러 검사를 한 것입니다. 미루면 일이 커질 수 있다는 철학관의 당부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건강검진에서 위에 이상이 발견되면서 추가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추가 검사의 결과는 말 그대로 참담했습니다. 검사에서 아버지는 위암을 진단을 받았는데 더 충격적인 것은 위암 3기로 진행되어 큰 병원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작년 건강검진에서 아무 이상 없었고 아버지도 어떤 의심할 만한 증상을 느끼지 못했기에 갑작스런 중병 소식은 가족 모두를 허탈하게 만들었습니다. 신년에 품었던 가족의 소망처럼 우리는 어떻게 라도 희망의 끈을 꼭 붙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담당 의사의 도움으로 서울 병원을 예약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울 병원의 진료가 갑자기 머피의 법칙이 되면서 우리 가족의 마음은 검게 타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서울에서 병원 진료는 고사하고 접수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신천지 교회로 인해 대구 경북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이 지역에 거주하거나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은 서울에서 진료를 받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서울의 대형 병원들까지도 방역에 뚫리면서 도미노처럼 하나 둘 폐쇄되고 있었습니다. 진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야속함과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부모님은 병원과 가까운 우리집에 머물며 숨죽인 2주간의 긴 격리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다행히 두번째 방문에서는 병원 예약과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다음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날도 확진자로 또 다른 병원이 폐쇄됐다는 소식이 계속 헤드라인 뉴스로 나오면서 우리는 초조한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음성 확인 결과를 받으면서 몇 가지 확인서에 서명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비로소 진료실 앞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아버지의 이름이 불리고 우리는 꿈에 그리던 진료실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순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상에 대해 울컥할 정도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소화기내과 진료실로 통하는 문은 지친 마라토너를 기다리는 피니쉬 라인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벅차오르는 감정과 발걸음을 진정시키며 서로의 손을 움켜잡고는 무채색의 밝은 진료실로 천천히 들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