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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Sep 07. 2022

06. 노트에 팬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서다

[에세이] 나는 퇴사에 실패했다

  글로 쓰는 스케치를 하기 위해 노트에 팬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문뜩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 보고 싶은 생각에 걷기를 멈추고 길옆 돌계단에 앉았습니다. 스케치가 눈으로 보는 것을 한줄한줄 그어 옮기는 작업이라면 글로 하는 스케치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나의 생각들을 모으고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대영 박물관에서 미래의 예술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명작 앞에 쪼그리고 않아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나 또한 교수님의 과제를 하느라 그들처럼 박물관에 전시된 자동차들을 직접 그리러 다닌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때는 책만 봐도 퀄리티 좋은 사진이 많아 왜 번거롭게 이렇게 과제를 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겪어 보니 그때의 생각이 틀렸음을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직접 보고 느낀 것으로 나의 것을 만들고 다져야 했지만, 그동안 나는 남의 시각과 생각에만 관심을 가지고 여기에 후한 점수를 매긴 것입니다.


  밖으로 나온 나는 주변부터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자주 대하던 곳에 시간을 들여 이것저것을 적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시각과 생각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필요하다면 동화 마냥 나의 상상력을 펼쳐 보고 싶어졌습니다. 아직은 과정만으로는 어떤 결과물이 나오게 될지 잘 모르지만 과정이 재미있어 나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내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이하루의 손글씨 학교(내손동 674-6)’인데 이곳에 놓인 이국적인 소품과 다정한 한글이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집의 한쪽을 차지할 만큼 등나무가 풍성하게 하얀 꽃으로 피어 올라 나무에 둘러 쌓인 집의 모습에 더해 빈티지의 백열전구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연애 편지를 다시 써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잘 아는 곳이 있는가 하면 ‘따꿈(따스한 꿈을 꾸는 작업실, 복지로 110번지)’처럼 처음 대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여느 주택의 외관을 하고 있어서인지 바로 앞인 데도 존재를 몰랐다는데 많이 놀랬습니다. 자세히 보니 뒤쪽으로 경사진 길이 만든 2층 높이의 마당과 여기에 놓인 소품들이 이곳의 존재를 알 수 있게 했습니다. 도서관을 마주보는 장소에서 커다란 정원의 장점을 가지고 특색 있는 전통차와 원데이 클라스로 따스한 꿈으로 채운 것은 분명 좋은 아이디어 같았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주변은 화려하지 않고 조용해 주말에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요리에 비유한다면 메인 요리가 아닌 밑반찬과 같고 나무로 치면 화려함 보다는 그늘이 좋은 나무같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것을 건물에 비유한다면 ‘화실 Blossom(내손동 667-10)’이 주변 분위기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려함이나 유행을 따르는 입시나 학원 같은 느낌도 들지 않으면서 아마추어의 손으로 한땀한땀 그려지는 정밀화는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미술이 작품이 되어 나오기 위해서는 고독이라는 창조의 과정을 거쳐야 하듯 가정집 차고를 개조해 만든 화실에서는 만약 잡스가 그림을 그렸다면 했을 법한 모습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파란 쇼 윈도우를 통해 들여다보면 동화 속 세상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테이블 위 노란 스탠드 불빛이 세밀화 두 점을 밝히면서 마치 시간을 멈춘 듯 엄숙함과 정감을 담아냅니다. 우연이겠지만 나는 화실 안이 환하게 켜지거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본적이 아직 없습니다. 이 광경을 맞이할 미래를 설레며 기다려 봅니다.


  주변에 재개발을 하는 곳이 생기면서 그곳에 살던 고양이들도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양이가 도로를 건너거나 주변을 지나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흰색 경차를 탄 캣맘이 나타나자 여기저기 숨어 보이지 않던 유기묘들이 모여 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변에 10곳 정도를 보살피고 있는 그녀는 생명과 위험을 돌봄이라는 띠로 분리된 세상을 연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의 눈에 유기묘로 비춰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자신의 털을 다듬듯 생각하고 쓰기를 반복해 나갔습니다. 이런 나의 행동에 어떤 친절한 사람은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먼저 크게 인사를 건넸고, 어떤 친절한 가족은 자기집 마당과 테이블을 쓸 수 있게 빌려주었고, 어떤 사람은 내가 하는 일에 방해가 안되게 비켜 지나가면서 나는 커다란 고마움과 위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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