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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Sep 02. 2022

05. 글은 모르는 것을 시도하게 한다

[에세이] 나는 퇴사에 실패했다

  재능이 있어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글쓰기가 여러가지로 내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상상력을 가지고 곧바로 써내려 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좋은 글에서 영감을 받아 쓰기를 시작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음식을 처음 먹어 볼 때 상대에게서 먹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은 방법입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고 서투르기만 한 경험의 동작이 이를 여러 번 따라하다 보면 방법이 생기면서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 방법이 아니었으면 감히 상상도 못했을 일을 시작하게 하고 손쉽게 배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작가들의 도움을 받아 좋은 글을 따라하고 흉내 내면서 나는 취향도 조금씩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의 글쓰기는 좋은 글을 기초로 큰 틀을 만들고 나면 젠가 게임을 하듯 상대의 것을 걷어 내고 내 것을 남기고 쌓아가듯 여러 번 고치고 다듬기를 반복하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나의 글쓰기가 이러하듯 나는 세상을 관찰하는 것으로 삶에서 변화를 찾고 싶습니다. 좋은 글에 더해 세상을 관찰하는 것으로 배움의 폭을 넓히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마치 번데기가 투명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비의 더듬이와 날개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이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인생을 100으로 놓고 펼쳤다가 이것을 반으로 접으면 내 나이가 됩니다. 인생의 중간 지점으로 마라톤으로 보면 반환점이 될 수도 있고 비행기를 탔다면 환승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환승장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저마다의 사연과 다른 목적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휴식을 찾아 제2의 인생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마시는 커피는 다 같은 커피지만 이것을 느끼는 맛만큼은 사람들마다 천차만별 다 다를 것 같습니다.


  “퇴사하면 제일 먼저 뭐할 거니?”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하면서 내가 그동안 신중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난 웨일즈에 가서 반년 정도 쉬면서 충전을 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니 이것이 속물근성에서 나온 생각 같이 느껴졌습니다. 웨일즈의 시골 마을에서 농장을 빌려 쉬면서 여행을 하겠다는 생각은 제주도 보다 고상해 보이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생길을 자초하는 선택이 될 뻔했습니다. 웨일즈까지 바로 갈 수 있는 직항이 없다 보니 히스로를 경유해야 하고 시골이다 보니 찾아가고 생활하는 것 어느 하나 불편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양들이 있는 초록의 자연을 거닐고, 차를 빌려 시내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으로 잠깐의 낭만을 즐길 수는 있겠지만 이것을 반년동안 반복한다는 것은 분명 힐링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근마켓에서 거래하듯 급하게 퇴사를 하면서 아직 이와 관련된 여행 계획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것에 집중해 계획을 짜는 대신 그냥 당장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으로 라도 나가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바라보고 싶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축도 같이 바라보고 싶습니다. 많은 내용이 아니더라도 조금씩 글로 쓰는 스케치를 하며 이 광경을 내 생각으로 담아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그냥 바라만 보는 것에 멈추지 않고 생각으로 담아 내는 것으로 나는 내 인생의 2막을 준비해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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