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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Sep 14. 2022

08. 사소한 욕심 집착을 내려 놓으니

[에세이] 나는 퇴사에 실패했다

  스케치 장소를 놓고 고심하던 중 뉴스를 통해 충정아파트가 철거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아파트는 책을 통해 보아온 것보다 낡아 보였습니다. 초록의 기운을 잃은 외관은 쓸쓸해 보였고 역사의 시간을 그냥 혼자서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초록색의 덧칠이 군데군데 벗겨졌지만 하얀 벽돌의 속살에서 과거의 위상이 어떠했을지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이제 몇 군데만 남았지만 가로격자 모양의 창문을 벽돌에 대입해 보며 과거를 상상하고 그려 보았습니다. 주변이 개발되면서 건물이 반토막 나는 아픔을 겪었다지만 세월의 흐름 탓인지 나는 이 상처를 찾질 못했습니다.


  최초의 아파트가 가진 타이틀에 걸맞게 많은 사람들이 충정아파트를 다녀가면서 건물은 건물대로 주민은 주민대로 지친 흔적이 여기저기서 느껴졌습니다. 출입구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경고와 함께 사진 촬영을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문구를 내붙여 놓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상가는 물론 이곳을 드나드는 주민들의 시선에서도 날카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할머니는 한 분은 손사례까지 치며 안에서 사진을 찍지 말라고 당부를 직접 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에 오늘 사진 찍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체념 섞인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민이 이곳의 주인인 곳에서 나는 이것을 잊은 채 나의 사소한 욕심을 채우는 데만 집착한 것입니다.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이 가시고 아파트를 다시 살피니 처음엔 안보이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건물이 반토막 난 곳이 아파트 출입구가 있는 앞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어디보다 웅장했을 아파트의 로비와 계단은 사라지고 잘려 나간 곳에 졸속으로 벽돌과 시멘트로 새로 만들면서 모양과 품격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기교도 없이 일률적이고 똑 같은 모양으로 마감된 콘크리트 벽면을 대하면서 이것을 상처로 보지 못하고 모던함으로 잘못 해석해 버렸습니다. 할머니의 당부가 없었다면 결코 얻지 못할 발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더 큰 궁금증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파트의 경고 문구에 더해 할머니의 당부로 외부만 보기로 마음먹었지만, 반쪽짜리 공부에 대한 아쉬움과 출입구 안쪽의 옛모습에 대한 궁금증이 나를 요동치게 했습니다. 결국 철거로 더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무릅쓰고 조금만 보기로 했습니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니 중정이 보였고 2층 복도를 걸으며 중정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이제 됐다는 깊은 안도감으로 몸을 돌려 나가려던 그때 열려 있던 현관문 사이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분명 조금 전 아파트 입구에서 당부를 하셨던 할머니의 목소리였는데 전과는 다른 한없이 맑고 온화했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들어왔으니 사진은 찍지 말고 눈으로만 봐 달라는 말씀을 미소로 남기고 자리를 비켜 주셨습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나는 곧장 아파트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주변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나의 머리는 이제 충정아파트보다 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편의점에서 드링크를 사 들고 2층으로 가 문 앞에서 할머니를 불러 보았지만, 그새 주무시는지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그냥 발길을 돌리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더는 방해해서는 안 될 것 같아 조용히 아파트를 나와야 했습니다. 할머니의 배려 덕분에 충정아파트가 따뜻하게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께 감사드리며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소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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