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어린 새싹이 어렵게 대지를 삐집고 나오더니, 순하고 여린 어린잎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에서 노란 꽃이 피기 시작했다. 자주 산책하던 길가에 수선화꽃 군락지가 있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무릎을 굽히고 눈을 맞추며 노란 꽃을 감상하곤 했다. 또한 으레 이 카메라를 켜고 사진을 찍어 보관하며 그때를 추억한다. 항상 같은 코스로 산책하던 길가에서 그곳을 지날 때면 꽃들과 대화를 나누고, 여린 꽃을 보며 여리고 청순한 이미지의 수선화가 마치 여린 여자 아이와도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고교시절 즐겨 듣던 배따라기의 수선화라는 노래가 생각나곤 했다. 어느 해에는 그곳에서 수선화 몇 포기를 조심스럽게 캐서 사무실 앞 화단가에 옮겨 심었더니, 해마다 작은 수선화가 피어나곤 했다. 땅속에서 겨울을 지내고 봄이면 꽃을 피우는 수선화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렵게 땅을 박차고 나온 수선화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구와 비교하지 않으며, 자기가 피어난 그곳에서 정성을 다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나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수선화를 여러 해 지켜보며 마치 우리네 인생과 너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시간의 흐름 속에 살다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진다. 그래도 다시 생명은 이어져 다시 꽃을 피우는 자연의 위대한 질서에서 무한한 감동과 교훈을 배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가 이렇게 우리 삶에 있어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네 인생과 한송기 꽃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엄마 아빠 품에만 있던 작은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첫 직장을 출근한 지 석 달이 되어 간다. 임용 후 처음 3개월은 시보기간을 거치게 된다. 함께 근무하던 분이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고, 이젠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내심 걱정을 하고 있다. 석 달 동안의 업무실적을 작성한다고 했다. 작성한 내용을 문자로 보내온 것을 보니, 그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업무파악을 잘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늘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생각했는데, 잘 적응해 가고 있는 모습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아빠로서 마음이 짠했다. 대학시절 학교가 집에서 등하교가 가능함에도 기숙사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 부모님 품에서만 있었는데 처음으로 독립해서 생활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흔쾌히 기숙사 생활을 허락했다. 두 학기 정도 기숙사 생활을 하며, 또래 친구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주말이면 아빠를 호출하여 기숙사로 데리러 가는 일이 잦았다. 그래도 아이가 불러 데리러 가는 길은 매번 기분이 좋았다. 또 한 번은 친구와 둘이서 북유럽 3개국을 20여 일 여행을 다녀오는 모습을 보며, 세상에 스스로 적응해 가려는 모습에 흐뭇한 생각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직장생활은 학교생활과 다르다. 상하관계의 엄격한 조직 내에서 자기의 위치를 찾아가며, 맡은 바 업무를 잘 수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직장 내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잘 적응해 가며 단단해져 가는 모습에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며칠 전 저녁 늦은 시간에 한통의 전화가 왔다. 작은 아이였다. 늦은 시간이라 깜짝 놀랐다. 혹시 큰일이라도 난 것일까.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랐다. 오피스털 주차타워에 차를 주차하다. 기둥에 부딪쳐 차가 고장이 났다는 것이었다. 몸은 다친 데는 없느냐고 물으니 다친 데는 없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당장 내일 오후에 장거리 출장이 계획되어 있어 초보운전자라 걱정이 많았는데, 거기에 사고까지 났다고 하니 더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다. 불안해하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천천히 해결 방안을 말해 주었다. 살면서 그런 문제는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몸이 다친 데가 없으니 천만다행이라고 말해 주었다. 밤이 늦었으니 일단 보험사에 전화해서 사고 접수를 하고, 내일 정비소에 들러 조치를 받으라고 했다.
아침에 서둘러 정비소에 들러 장거리 출장이 가능한 것을 확인하니, 앞 범퍼만 교체하면 된다고 했다. 일단 장거리 운전을 해도 괜찮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서둘러 대전 출장지로 출발했다. 초보운전에 장거리 운전이 처음인 아이는 많이 걱정이 되었나 보다. 수시로 아내와 통화하며 대전에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은 후에야 안심이 되었다. 출장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광주집에 도착한 것을 보며 지난 3개월 동안 많이 성장하고 단단해진 것을 느꼈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으로, 한 직장의 직장인으로,, 어디든 혼자서 갈 수 있는 운전자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단단해진 아이로 다시 태어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젠 부모의 품을 떠나 홀로 서는 모습과 더 단단해져 가는 모습을 보며 길가에 수선화가 생각이 났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나 스스로 내 삶에 정성을 다하며, 자신감을 갖고 자기 자리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수선화처럼, 예쁜 꽃을 활짝 피우기를 기도하고 응원해야겠다. 작은 사고를 통해 더 단단해져 가는 모습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올 겨울 마지막 찬바람이 거세게 분다. 세상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넘어지면서, 우리는 적응하고 더 단단해져 간다. 바람을 어떻게 받아 드릴까. 바람은 더 강한 나를 만들어 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오늘이 좋다. 내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