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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이 온다

생활

by 하모남


반백년을 살아보니 세상 모든 일이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특히 좋은 일은 더 쉽게 오지 않는다. 매화꽃이 가지마다 몽글몽글 터지려고 하더니 얼마 전 아침 진눈깨비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어 깜짝 놀라서 다시 몸을 사리고 간신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옷장에 넣어 놓으려고 했던 겨울 옷을 다시 꺼내 입고 출근을 하며 찬바람에 머리가 띵했다. 갑작스러운 꽃샘추위에 매화꽃몽오리가 깜짝 놀라 가지 끝에서 떨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내심 아팠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날씨와 같이, 우리네 삶도 날씨처럼이나 변덕스럽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적응해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순탄하게 잘 되는가 싶다 보면, 어김없이 마가 끼기 마련이다. 마치 쉽게 이루면 재미없다는 듯이 말이다.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변화무쌍한 인생길에 이제는 적응할 것 같으면서도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인생은 한번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마치 자연이 겨울을 이겨내야 꽃을 피우는 것처럼.....


꽃샘추위도 잠시라는 것을 알기에, 잘 참고 견딘 개나리와 목련꽃이 일제히 우리 곁에 찾아왔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한다.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는 뜻이다. 사전에는 '봄, 청춘, 성장기, 초기, 도약, 튀어 오름, 생기, 활력, 용수철, 샘, 원천, 발생, 반동, 튀다, 솟아오르다,..'라는 정말 많은 뜻들이 있었다. 마치 모든 만물이 기다렸다는 듯이 용수철처럼 대지를 일제히 박차고 솟아오르는 모습은 가히 기적이고 감동이며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가는 길목에 개나리와 목련, 수선화가 황홀하게 활짝 피었다. 너무나 반가워 카메라를 들여대며 사진을 찍고, 코끝을 가까이 대며 향기를 맡아보았다. 작은 나무일수록 향기가 강하고, 크기가 큰 것일수록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긴 겨울을 지낸 꽃들이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는지, 잎새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현상을 보니 성격이 급한 녀셕들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누가 알아주거나 봐 주는 이가 없어도, 누구와 비교하지 않으며 자기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존경심과 더불어 나도 한 송이 꽃처럼 내 인생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모든 것이 감사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꽃들이 만 말한 것을 보니 너무나 행복하고,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있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다.


젊은 용사들과 함께 식당으로 가며 내가 사진을 찍는 모습에 신기한 듯 쳐다보는 것이다. 나는 활짝 핀 꽃들이 그렇게 감사하고 신기한데 젊은 친구들은 감성이 메말랐는지 별 감흥이 없었다. 봄이 오면 당연하게 꽃이 피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나만 너무 호들갑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젊은 친구들의 생각과 반응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의 마음과 본능에 충실하고 싶었다. 주말에는 완연한 봄날씨가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주말 오후 하모니카 2개와 작은 마이크를 들고 호수가 정자로 하모니카 버스킹을 나갔다. 솔솔 불어오는 봄바람과 호수의 잔잔한 물결이 너무나 평화로운 주말 오후였다. 많은 주민들이 편안한 복장으로 연인끼리, 가족끼리 삼삼오오 손에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호수를 둘러싼 데크에는 사람들의 향기가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데크 중앙에 있는 정자에 앉아 하모니카 연주를 시작했다. 새해에 들어 처음 하는 야외 버스킹이 어색한 기분이 약간 들었다. 나의 연주가 마음이 들었는지 산책하던 시민들이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내의 연주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산책을 하는 시민들이 엄지 척과 박수, 가까이 다가와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봄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관람객들이 즐거워하니 나도 더 기분이 좋았다. 나의 작은 재능으로 누군가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에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어떤 관객은 매주 연주를 하느냐. 언제 나오느냐. 자주 나와 연주를 해 달라고 하는 모습에 봄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초등학교 6학년이란 친구 3명이 오더니 나의 연주 모습을 동영상 촬영을 하고, 사인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꺼이 싸인을 해주며 열심히 공부하라는 덕담도 해주니, 매우 고마워하고 즐거워하는 친구들의 모습에도 봄이 와 있었다. 겨우내 실내에 서면 연주하던 답답한 마음에서 시민들과 함께 하니 너무나 즐거운 주말 오후였다. 봄은 주변의 개나리와 목련에만 와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시민들과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의 걸음걸이에도 봄이 와 있었다. 짧은 봄이 우리 곁에 소리 없이 온 것처럼 또 소리 없이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봄을 즐기자. 오늘을 즐기지 못한다면 내일도 즐겁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벼운 산책을 하며 주변의 봄을 느끼며 더 행복한 인생길을 만들어 가야겠다. 오늘이 좋다.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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