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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니?

생활

by 하모남


산다는 것은 먹는다는 말과 통한다. 세상에 살아 있는 생명중에 영양분의 모양은 다르지만, 먹이를 먹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무는 땅속에 뿌리를 깊게 박고, 수분과 영양분을 나뭇가지 끝까지 퍼 올리지 못하면 비실비실 말라죽게 된다. 또한 동물이나 사람도 음식을 먹지 않고서는 성장할 수도 더 이상 살 수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매일 먹는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가끔 잊고 살 때가 많다. 벌써 오월이다. 오월의 첫날 근로자의 날부터,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여러 의미 있는 날들과 여러 사연을 가진 가정의 달이다. 오월은 아이에서 어른까지 서로를 위해주고 응원하며 감사해야 하는 날로 채워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 쓰이는 날이 어버이날이다. 어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는 찾아가 용돈도 드리고 맛난 것도 사 드리고 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께서 요양병원에 계시니, 살아생전 어머니가 너무 그리워진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오고, 어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여, 좋은 추억으로 그리움으로 내 가슴속에 한가득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해 주시던 정성 어린 집밥이 지금도 너무 그립다. 전방에서 군생활을 하던 시절 오랜만에 집에 가면, 어머니가 해 주시던 정성 어린 밥 한 그릇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얼굴이 조금이라도 말라 보이면 '밥은 잘 먹고 다니냐', '때는 거르지 마라'.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언젠가 TV프로그램 중에 타지에 나가 있거나, 결혼한 자식에게 어머니가 해 주신 정성 어린 집밥을 준비하여, 자식들에게 배달을 해 주며, 서로의 속 마음을 영상으로 찍어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보며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 제때 밥을 챙겨 먹지도 못하면서, 살아온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가슴 아픈 사연과, 배불리 못 먹고 일찌감치 산업전선에 뛰어든 자식 세대의 아픈 사연들을 들을 때마다 많은 공감을 했다. 지금이야 돈만 있으면 먹고 싶은 것들을 쉽게 먹을 수 있는 시대지만, 70~80년대에는 모든 것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아들들은 고등학교라도 가르치려 했지만, 딸들은 살림 밑천이라 하여 중학교를 마치면 시내로 나가, 방직공장을 다니며 어렵게 야간 고등학교를 다녀야 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시내로 나와 직장에 다니던 큰 형님과 자취를 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시골집에 가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어 드려야 했다. 힘든 농사일을 하시면서도 자식들 만은 더 나은 곳에서 살아가라고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를 해 주셨다. 많은 헝제들 틈에서 살아남으려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래도 여러 자식들을 대학까지 가르쳐 주신 덕분에, 지금은 각자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모두 부지런하고 성실했던 부모님 덕분이다. 자취를 하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창 자랄 때라 그런지, 밥을 먹고 나면 바로 배가 고팠다. 그래서 주말이면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쌀을 매주 한말씩 가지고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덕분인지 키가 작던 나는,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정도의 키로 자랄 수 있었다. 자취 3년 동안 밥을 하는 것부터 간단한 반찬이나 국, 찌개를 끓이는 것까지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결혼을 한 후에는 음식을 한다는 것은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 서다. 어느 날 매일 밥상을 차리는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요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조금씩 요리를 배우게 되었다. 유튜브가 큰 선생님이 되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 본 아내와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아빠는 요리사 같다는 말에 지금까지 꾸준히 요리를 하고 있다. 이젠 요리 노트에 50여 가지의 레시피가 적혀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기분 좋은 사랑의 표현이다. 내가 준비한 음식을 한 식탁에 서로 둘러앉아, 기쁜 마음으로 웃으며 먹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음식을 하고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을 우리 어머니도 느끼셨을 것이다. 함께 음식을 먹으며 함께 하는 시간이 진정 행복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가끔 집 나가 있는 아이들이 온 다고 하면, 아내와 나는 마음이 바빠진다. 무슨 음식을 준비해 줄까. 먹고 싶은 것은 뭐냐며 물어보는 모습에서 내가 진정한 부모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요리에는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정성이 들어가는 요리는 재료부터 다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습관이며, 우리의 인생을 가장 풍요롭게 해 주는 기술이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말은 요즘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남편도 맛난 음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어버이날 전 주에 아이들이 집에 왔다. 양손이 무겁도록 바리바리 싸주는 모습에서 어머니가 떠 올랐다. 아이들이 차를 타고 떠날 때에도 '밥 잘 챙겨 먹어라'. '배 곯면 안 된다'는 아주 단순하고 사소한 말속에 부모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얘들아 사랑한다. 밥이 보약이란다. 오늘이 좋다.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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