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풍경

생활

by 하모남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로 시작되는 동요는 1924년 윤극영이 만든 「설날」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는 밝고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을 잘 표현한 곡으로, 설날이 가까워오면 가장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이 노래를 부르며 설날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1970년대 초, 우리나라는 새마을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였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농촌 빈곤 퇴치와 생활 개선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초가지붕은 기와나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고, 꼬불꼬불하던 마을길과 담장도 정비되었다. 마을마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활기가 넘쳤다.

한 집에 아이들은 보통 네다섯 명 정도였다. 부모님들은 정말 열심히 사셨다. 농사일을 하시면서도 농한기에는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보리밥과 국수로 끼니를 때울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 무렵 통일벼가 나오면서 벼 수확량이 획기적으로 늘었고, 그때부터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도 매주 일요일이면 마을 공터에 모여 대청소를 하곤 했다. 마을마다 향우반장이라 하여 6학년 형이 완장을 차고 마을 대청소를 진두지휘했다. 특히 설날을 앞두고는 더욱 깨끗이 청소했다.

나도 국민학교 6학년 시절 우리 마을 향우반장을 했다. 팔뚝에 완장을 차고 마을 깃발을 들고 학교까지 십리길을 걸어서 다녔다.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비포장길에 어쩌다 차라도 지나가면 흙먼지가 우리를 덮치곤 했다. 1학년 어린아이부터 고학년까지 줄을 지어 학교로 갔다. 매주 학교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듣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많은 아이들은 설 명절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돈을 벌러 떠난 형이나 누나가 오는 명절에는 평소 갖고 싶었던 선물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명절에는 맛있는 과일이나 과자, 떡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으니 그것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었다.

우리 집과 큰집은 위아래 집이었다. 사촌까지 아이들만 무려 아홉 명이었다. 큰집 안방에서 차례를 지내는 일은 전쟁 같았다. 좁은 방에 아이들과 어른들이 뒤엉켜 차례를 지냈는데, 한 번에 다 하지 못해 몇 번으로 나누어 지내야 했다. 그래도 너무나 신났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 형들에게 도시 이야기도 듣고, 차례가 끝나면 맛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세뱃돈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시절은 옛이야기로 가슴속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이제 설날 풍경도 많이 변했다. 시끌벅적하던 모습은 사라졌고, 가정은 핵가족화되었다. 한두 명만 낳아 키우는 요즘은 모든 것이 많이 달라졌다. 그래도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좋다. 1년에 두 번, 설날과 추석에 모여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은 지친 마음을 달래 주고 다시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집을 떠나 직장생활을 하는 두 아이가 집으로 왔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집에 가던 우리 시대와는 달리, 각자 승용차를 몰고 트렁크에는 가득 선물을 싣고 왔다. 아이들이 오니 명절 분위기가 절로 났다.

아내는 아이들이 오기 전에 이것저것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했다. 예전 같으면 방앗간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며 떡가래를 준비해야 했겠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아내와 함께 대형마트에 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가득 준비했다. 명절 전이라 그런지 대형마트에는 설 명절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저마다 분주한 모습을 보니 명절 분위기가 절로 느껴졌다. 표정들을 보니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인 듯했다.

큰아이는 엄마표 만두를 엄청 좋아한다. 그래서 넉넉히 재료를 준비했다. 함께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무려 다섯 시간이나 공을 들여 만두를 빚었다. 아내는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했다. 옛날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하나라도 더 주기 위해 동분서주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아내의 뒷모습에서 보았다. 왠지 모를 감동이 밀려왔다. 나도 열심히 손을 보탰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작은 아이는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내와 나, 큰아이는 끝까지 마무리를 했다. 특히 올해 말 결혼을 앞둔 큰아이에게는 더없이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만두를 빚어 찌고, 다 익은 만두는 바로 냉동했다. 떨어져 사는 아이들에게 바리바리 싸 주기 위해서였다.

저녁에는 아이들과 윷놀이를 했다. 나와 아내가 한편이 되고, 아이들이 한편이 되었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윷놀이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더욱 다지는 시간이 되었다. 승부욕을 높이기 위해 약간의 돈도 오갔다. 평소에 잘하지 못하던 아내가 너무 잘한 덕분에 우리 팀이 이겼다. 아이들에게 절반의 돈을 돌려주고 마무리했다. 윷놀이를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는 사위들도 함께해 더 즐거운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얘들아, 아빠는 너희가 자라면서 힘든 순간도 있었고, 때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명절에 다시 모여 따뜻한 시간을 나눌 수 있어, 우리 가족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느끼게 된다. 너희가 어디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아빠는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은 언제나 함께이고, 어떤 어려움도 나눌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거야. 사랑한다.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함께했으니, 우리 모두 더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오늘이 좋다. 내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