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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Mar 31. 2024

개나리꽃 필 무렵

화사하고 우아한 삶을 사는 엄마에게


어머나 여기 개나리 핀 거 봐

그러게 아이고 예뻐라

이것도 향이 있나?


집 앞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울타리에 심긴 꽃을 보며 왁자지껄 떠든다.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밝은 빛을 한동안 바라보며 에너지를 받는 듯했다.



 

일요일 오후, 그렇게 쌀쌀맞던 꽃샘추위는 슬그머니 뒷걸음쳐 물러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흐드러지게 개나리가 피었다.

낮은 울타리 때문에 집안이 훤히 보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가리기 위한 중장기 계획으로 삐쩍 마른 나뭇가지를 심었었다.


그 나뭇가지는 1~2년 시름시름 앓더니 

몇 년 후부터 매 해마다 잊지 않고 저렇게 노랗게 피었다. 


어느 해는 개나리 흉내만 낼 정도로 인색하게 피기도 하고,

그다음 해는 미안했는지 돈으로 살 수 없는 멋진 모습의 선물을 안겨 주기도 했다.




우리 아빠 돌아가신 날도 그렇게 개나리가 피었다.

마침 어린이집 운영위원회가 있어 준비로 분주했던 그날,

아빠의 부고 소식을 병원으로부터 받았다.


3개월 전, 아빠의 임종을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고 미국에 사는 오빠까지 와서

아빠 병원을 몇 차례 다녀온 후였다.

그래서였을까? 당황스럽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아빠는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꽤나 호감 가는 미남형이었던 아빠는 무던하게도 엄마를 힘들게 했다.

아빠는 그렇게 개나리 필 무렵,

한 시대의 세대교체라도 알리듯, 친가나 외가 쪽을 통틀어 처음으로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39년생이다.

아빠는 41년생이었고 우리 삼 남매는 엄마가 연상이라는 걸 성인이 된 후에나 알았다.

엄마는 그 당시에 대학까지 나온 신여성이었다.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말이 당연시 되던 그 시절

엄마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러다 멀쩡하게 생긴 아빠를 어쩌다가 만난 것이다.

소개해준 목사님은 나이도 꽉 찬 사람들이 오래 끌 거 있냐고 당장 결혼하라고 했다며 지금도 그때 일을 말할 때면 꼭 그 얘기를 잊지 않고 하신다.


나이도 꽉 찬 사람들이 오래 끌 거 있어요? 빨리 하세요


그때 엄마나이 29살 아빠 나이 27살이었다.

지금도 엄마는 공공연한 일을 비밀에 부치신다.

39년생이지만 호적을 2년 뒤에 올렸기 때문에 당신은 41년생이라고




그렇게 시집간 엄마는 말도 안 되는 대가족 살림을 하셨다.

시어머니와 시동생 셋과 함께

지금 세대들에겐 아니, 나의 세대에도 듣기 힘든 가족구성원이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요

공부하는 시동생이 있어 잠깐 살았었어요


뭐 이 정도의 구성원은 더러 듣기도 했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시동생 3명은 가이 살인적이다.

그렇게 엄마의 시집살이는 시작되었다.

사실 내가 결혼하고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기 전까지

엄마는 그냥 원래부터 엄마인 줄 알았다.

태어날 때부터 음식을 잘하는 줄 알았고

못하는 일 없는 슈퍼우먼 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

게다가 돈도 벌었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잔소리 대신 본인의 행동으로 늘 보여주셨다.


얘야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


 

두어 가지를 꺾꽂이한 개나리는 낮은 울타리를 적당히 가려 침해받지 않을 나의 권리를 단단히 지켜준다. 개나리 필 무렵이면 [사진 by 준비된 화살]


낮은 울타리 안

겨우 두어 가지 꺾어 심기한 개나리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거뜬히 뿌리를 뻗고 성장하여 밖에서 훤히 보였던 집안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중장기 계획에 단단히 제 몫을 한다.




개나리 필 무렵이면,


멋지게 태어났지만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서 아쉬워하는 사람 찾기 어렵게 살다 가신 아빠와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지만 배움과 나눔의 삶을 선택하며 멋지게 사는

화사하고 우아한 엄마가 클로즈업되어 다가온다.


엄마의 작은 기침에도 안쓰러워 도라지 청을 싸 오는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엄마의 아름다운 삶에


화사하고 아름다운 개나리 꽃을 바친다.

개나리꽃 필 무렵에는


퇴근후 집에 들어가기전 지나가는 사람 흉내를 내본다. 개나리 필무렵인 '지금'은 너무  빨리 지나가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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