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박자 쉬고 두 박자 건너뛰고

우리도 초임일 때가 있었잖아

by 준비된화살

우르르쾅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게 번쩍거리며 난리가 났다.

웬만하면 중간에 깨는 법 없는데 그 소리에 눈이 번쩍 떠지며

새벽잠을 깨운다.

작년 대비해 유난히 비가 내리지 않는 불볕더위에

비는 언제 오려나 기다리던 중에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비를 쏟아붓는 하루다.


아이들과 토마토 파스타 만들기 활동을 하기로 한 날이다.

방울토마토를 수확한 후, 깨끗이 씻어 썰어 올리브오일에 달달 볶아 파스타와 소스를 넣어 버무리면 완성


선생님! 내일은 토마토파스타 만들기 활동이 있으니
오늘 아이들과 방울토마토 미리 따서 씻은 후 준비해 주세요





단단히 부탁을 했건만 파스타 만들기가 있는 날 출근하자마자 살펴보니

방울토마토는커녕 토마토 꼭지하나 보이지 않고 빈 바구니만 덩그러니 휑하다.


순간 울컥하며 올라오는 이 난감함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뭐 하는 거지?

생각은 하고 있는 건가?

누구를 위하여 나는 이 텃밭 프로젝트를 하는가?


만들어 먹을 땐 좋아라 하면서 준비는 안 하는 이 모습은 뭐지?

분명히 화가 나는데 그렇다고 화난다고 할 수도 없고

화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이 기분의 출처를 애써 찾다가

어제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 때문에 잠을 설쳐 그런 거라며 핑계를 댔다.




그래 비가 와서 아이들과 따기가 힘들었겠지

그래 비가 조금 그치면 따려고 했었겠지

그래 비 맞는 게 싫었겠지

그래

그래

그래


수많은 <그래>를 외쳐 봤지만 이해를 하려고 얘를 써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이럴 때 의욕이 뚝 떨어진다.

아이들의 편식을 고쳐보겠다고 텃밭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분명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맞다

그 결과 채소에 대한 선입견이 현저하게 완화되었고,

채소에 대한 긴장감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결과는 너무 좋은데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생각이 야속했다.


원래 원장이 다하는 거야
텃밭은 나의 영역이 아니야
오늘 프로젝트는 내가 신경 안 써도 돼






텃밭활동은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물을 주어야 하고

추비를 줘야 하고

가지치기를 해줘야 하며

풀을 뽑아줘야 한다.

누군가는 줄을 매 주어야 하고

쓰러진 가지를 세워줘야 한다.

수확해야 하고

그 수확한 것으로 요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결과물만 느끼고 즐기려 하니

여러 가지 일을 감당하던 한 사람은 잘하다가도 가끔 단전에서부터 욱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어쩌랴

누가 그걸 하라고 했냐라고 묻는다면 난 딱히 할 말이 없다.

그 누구도 하라고 등 떠민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일> 이라고만 생각했다면 못했을 텃밭 가꾸기는

나를 건강하게 하는데 지대하게 이바지하였고 좋아서 시작한 일 맞다.




그래도 알려야겠다.

말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른다.

알겠지 알아서 하겠지는 너무 서로를 힘들고 서운하게 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 모르면 서로 실수하게 된다.


"선생님 오늘 파스타는 못하겠어요 토마토가 주재료인데 주재료가 없으니 할 도리가 없네요"

이렇게 또박또박 얘기할 거다.

<욱>을 내려놓고 조금 고상한 언어를 고르고 골라한 템포 쉬며

어떻게 말할까를 고민했다.

어떤 톤으로 어떤 뉘앙스로 어떤 단어로 할까?

그렇게 반박자 쉬고 일어섰다.

이제 됐다 말해야지

그 반으로 가려고 일어섰는데 젖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담당 선생님이 바구니를 들고 다가온다.


원장님 죄송해요
어제 비 그치면 따야지 하고는
계속 비가 와서 수확을 못했지 뭐예요
오늘도 비가 그칠 기세가 없길래 지금 막 후다닥 땄어요
이 정도면 될까요?


이제 스물 중반인 초임 선생님은 토마토 수확한 바구니를 낑낑 대며 들고 오며 씩 웃는다.

비가 오니 아이들과 수확체험을 할 수도 없어 비 안 오는 찰나를 기다리다 이렇게 됐단다.





학창 시절 체육대회를 할 때면 어깨동무를 하고

목소리가 터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런 노랠 하곤 했다.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건너뛰고
야야 야야야야 야야야야 야야 야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


그렇게 어영부영 부르는 노래하나에도 우린 숨을 고르곤 했다.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건너뛰고



그래, 한 박자 쉬길

두 박자 건너뛰길 잘했다.

선배야 우리 턱까지 차오르는 숨 참고

잠깐의 숨 고르기 한번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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