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야 할건 작물의 키가 아니라 열매이다.
이상하게 가위에 욕심이 많았다.
잘드는 가위를 보면 이름 대문짝 만하게 써서
필통에 넣어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 이름표도 오리고 메모지도 오리고
닥치는대로 오리는것에 취미가 있었다.
초보 텃밭러가 되어서도 그 집착은 변함이 없다.
텃밭에 들어 갈때면 반드시 가지고 나가는것이 있었으니
역시나 가위다.
가위로 작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가지를 톡톡 자르고 있으면
그 소리가 참 시원하고 개운하게 들린다.
쓸데없는 곁가지는 열매 맺는걸 방해하는 주범이다.
그러니 정기적으로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곁가지에게 영양분을 홀라당 빼앗기고 만다.
고추는 Y자 모양 줄기 아래에 자라는
고추가지를 사정없이 후려 쳐주어야 한다.
토마토는 열매 아래에 있는 가지를 쳐 서
위에 달린 열매로 오롯이 영양분이 가도록 도와야 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1년 365일 열두달이 바쁘다.
봄은 수줍게 올라온 여리디 여린 시금치의 계절이라
잘 자라도록 솎아주어야 하고
여름은 막춤을 춰도 용서되는
오이,가지,상추들이 흐드러진 세상이라
적절한 수확 시기를 놓치면 안된다.
가을은 끝까지 주고 싶어 자신의 몸뚱아리까지 모두 주는
고춧잎을 따서 삶은후
고소한 참기름 넉넉히 넣고 무치는 고춧잎나물 같은 시간이라면
겨울은 그동안의 애씀에 녹초가 된 이들에게
잘했다고 잘 성장했다고 전하는
화로속 고구마의 뜨끈함을 전해야할 시기 이다.
그렇다 보니 늘 분주하여 항상 기억하고 해내야 할 업무가 많다.
여기에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업무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것은 미루고 어떤것은 먼저해야 하고
어떤것은 하지 않는것을 정하는 가지치기 작업은
하루 일의 성취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어린이집 초보 텃밭러를 자청하여 시작한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다 보니 별수없이 집에 있는 작은 텃밭은 남편에게 넘겼다.
남편은 작은것일 지라도 없애거나 버리거나 자르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정이다.
가지의 곁가지도 오냐 오냐
오이고추의 곁가지도 예뻐 예뻐 한다.
그 때문인지 토마토는 아예 곁가지가 무럭무럭 자라 원가지를 덮어 열매는 커녕 가지만 얽히고 섥힌 모양새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가끔 남편은 어린이집 가지는 어떠냐는 둥 고추는 얼마나 수확했는지
가지는 여전히 잘 자라는지등을 묻곤 한다.
나는 텃밭을 찍은 사진까지 보여주며 집보다 더 많이 따고 더 무럭무럭 자란다고
마치 자식 자랑하듯 한참을 떠든다.
그러고 나면 다 같이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괜히 너무 내 자식만 잘났다고 한건 아닌지 머쓱함과 미안함이 몰려든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지 않던가
가지치기를 통해 열매가 실하게 맺히고 성장하는 걸 매순간 경험한 사람으로서는
그 경험치를 잊을수 없어 가위를 든다.
우리의 삶도 텃밭의 작물처럼 꾸준히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기 위한
가지치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번 내가 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을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을
넓은 테이블에 쫙 펼쳐 보려고 한다.
어떤 일을 선택할것이고
그 선택한 것에 나는 어떻게 집중할 것인가
작물을 바라보며 어떤 가지를 과감히 자르고
그리고 어떤 열매에 집중하여 키울 것인가를 생각하듯
그 방법은 가지치기 할 가위에 달렸다.
매일 바쁘고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잘 드는 가위 한자루가 필요할때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