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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Sep 12. 2023

#4 퇴사를 망설이는 그대에게

누구나 박수 칠 때 떠나고 싶다 [사진 by준비된 화살]

2월이면 신학기를 앞두고

아무에게도 제출하지 않을

이력서를 그렇게 갱신한다.




이직을 하려고 할 때

묻어둔 과거를 하나하나 더듬으며

부리나케 작성하는

형식적인 이력서가 아니다.

'나는 작년을 매력적으로 살아왔는가'

스스로 묻고 답을 한다.


2월의 이력서를 쓰기 시작한 지

거의 20년이 되어 간다.

공부를 하던지, 자격증을 따던지

그게 안되면 줄어든 몸무게라도 썼다.

어느 해는 증명사진을 새로 찍었고

대회가 있으면 실력이 안 돼도 끄뜨머리 상(참여상 정도?)이라도 타서

한 줄을 기어이 채웠다.




조금 지나니 이력에 넣을 것과 뺼것을 가지치기해야 하는

시기가 오기도 했다.

(이건 면접관으로써 느낀 내 생각이다.-실질적으로 이력서가 너무 길면 오히려 가독성이 떨어지고 딱히 전문성 있어 보이지 않는다. 기타 등등의 자격증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다고 억울해할 것도 아니다 그동안의 이력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니까)


점점 상위 버전만 추려서 간단명료하게 작성하면 된다.

보육 관련 자격증을 예로 들자면,

2004년 보육교사 2급 취득

2008년 보육교사 1급 취득

이렇게 두 가지를 쓸 필요가 없다.


<2008년 보육교사 1급 취득>만 심플하게 쓰면 된다.





가을은 갑자기 스산해져서일까? 가능한 마음 추워지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사진 출처 준비된 화살}


11월인가?

죽을 것만 같던 마음의 압박감을 뒤로하고

드디어 이직하기에 적당한 직장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어떻게 운영할 건지

운영계획서를 작성하고, 원장의 공신력을 인정받아야 하며

PPT발표를 해야 하는 난제가 있긴 하다.

이력서등은 늘 업그레이드해 두어서 별 염려가 없었다.




떨어져도 상관없었다.

우리가 늘 이야기하던 경험 삼아!

나의 유일한 변명이고 방패막이었다.

'그래 난 경험 삼아해 보는 거야'


그래도 이왕이면 붙고 싶었다.

날카로운 말들이 돌아 돌아 들려도 결코 무뎌지지 않는 그 서슬 퍼런 말들을 내 앞에 무릎 꿇리고 싶었다.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일에 올인했던 난

과연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도 궁금했다.


무엇보다 한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

아니, 몸서리칠 정도로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었다.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하고, 초췌했지만

핑크빛 정장으로 단단히 감췄다.

그렇게 PPT발표를 마치고

며칠이 흘렀다.

통상적으로 당일 또는 다음날이면 발표가 나는데...

주말을 넘겼다.

'안 됐구나... 괜찮아 경험이었으니까' 애써 서글픈 감정을 어설프게 위로했다.




월요일,

교육으로 인해 핸드폰은 무음이었다.

솔직히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잠깐 들춰본 핸드폰에 몇 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다다다다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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