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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Sep 14. 2023

#5 퇴사를 망설이는 그대에게

합격을 축하합니다. [사진 by 준비된 화살]

합격을 축하합니다.



장문의 문자가 와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해 여름부터 깊어가는 가을까지 겪었던 무서운 공포에서 건져 올려졌다. 마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던 나를 뜰채로 올리듯이


혹시나 2년 전 받았던 그 합격 문자가 아직도 있을까? 하여 뒤져보니 아무리 찾아도 없다.

캡처라도 해둘걸... 뭐라 뭐라 적혀 있었지만 요점은 그랬다.

축하한다고




그때부터 가슴이 뻐근했다.

침착해야 한다.

좋은데, 좋아 죽겠는데 감정을 납작하게 누르고 있었다.

순간 웃음이 픽 나왔다.

그래 이젠 됐다. 앞으로 열심히만 하면 된다. 새로운 자리에서 꽃을 피워 내리라




이직하게 될 어린이집이 워낙 급박하게 신축으로 지어져 할 일이 산더미였다.

12월 말일로 퇴사하겠노라 빨리 보고를 해야만 했다. 자꾸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다가 바지에 쓱쓱 문질렀다.


나의 보고에 난리가 났다.

순식간에 괘씸하고,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어쩌라는 거지?

내가 알고 있고 가진걸 쏙쏙 빼먹도록 놔두었더니, 여기서 뼈를 묻으라는 심산이다. (그렇다면 뼈를 묻을 수 있도록 고용에 대한 안정감을 주면 좋았을 텐데)


그건 난 모르겠고, 이렇게 하는 건 아니지 하는 심보는 무슨 종류의 마음일까?


  



언젠가 TV에서 구직사이트 광고를 봤다.

직장 내 선배가  이직을 고민하는 후배를 향해 "버텨"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 선배는 새로운 곳의 이직을 꿈꾸며 준비하는 모습을 후배에게 들키고 마는 내용이었다.

웃펐다.(사전적 의미는 웃기면서 슬픈 것을 말한다.)




굳이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단계를 논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안다. 인정의 욕구가 충족될 때 얼마나 많은 힘과 생각지 못한 의욕과 엄청난 아이디어가 샘솟는지를!


그래서 난 가급적 교직원들에게 잔소릴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잔소리 듣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어할 거라는 이상한 생각이 내겐 항상 있었다.

잔소리는 옳은 소리를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직이 확정되고 퇴직 보고를 한 후, 한 달 하고도 2주간의 시간이 다른 종류의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너무 수고했다고 좋은 곳으로 이직하게 돼서 너무 잘 됐다고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 있지만 따스하고 온화한 얘기를 나누게 될 줄 알았다.(아무래도 난 너무 휴먼 드라마를 많이 본 거 같다. 그건 나만의 대단한 착각이었다.)




가시방석 같은 6주 동안 가능한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동동 뜬 마음을 다잡았다. 평범하게 마무리하고 평범하게 교직원과 학부모에게 알렸다. 너무 많이 아쉽고 슬픈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딱 그 마음만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이 있었다. 그동안 이곳에서 너무 오래 있었다.(유아교육계에서는 원장이 한 곳에서 10년 이상 근속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나와 같이 위탁받는 경우에는)




나를 괴롭히던 공황장애 같은 복수는 이미 끝났다.

 

최고의 복수는

그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내가 잘되는 것이다.

그가 망가지는 게 아니라

내가 가치 있고 탄탄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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