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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Sep 21. 2023

우울할 때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건 행복하다.

사진 by준비된 화살

스무 살이 되던 해로 기억한다.

하늘이 너무 파랗고 맑아서

마치 날 위해 준비된 하루 같았다.


대학에 갓 입학해 모든 게 재밌었다.

어른인 듯 아닌 듯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꽤나 흥미진진했다.

마치 몇 년 전부터 성인 여자였던 것처럼 7cm 높이의 힐을 신고,

헤벌죽 벌어진 입구에  달린

줄을 쭉 잡아당기면

복주머니처럼 야무지게 닫히는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꼭 책을 가슴에 두어 권 고 다녔다.

굳이




대단한 똥폼이다.

큰 가방에 이것저것 넣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다니면 될 것을

그게 그 당시 89학여대생의

트렌드였나?


눈화장은 요란했다.

눈두덩이에 겨자색 아이샤도우를 펴 바르고

갈색으로 아이라인을 그렸다.

앞머리는 일명 닭 볏 머리

산처럼 올려 스프레이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미팅이라도 할라치면

그 화장은 더 심란해졌다.

(물론 그때는 그게 예쁜 줄 굳게 믿었었다.)


그렇게 국적불명의 화장을 하고 다니던 어느 날

같은 교회를 다녔던 영자(가명) 언니가

날 잠깐 불렀다.

점심을 사주겠노라며 날짜를 잡으라 했다.


나와 두 살 차이 나는

영자 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구로공단의 한 공장에 다녔다.

그 당시 그렇게 일하는 사람을

공순이라고 불렀다.


외식을 하는 것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그때

영자언니는 개봉동의 한 갈빗집에서

돼지갈비를 사줬다.

학교에서 고작해야 싸구려 라면이나 칼국수를 먹던 내게

선명한 주황빛 숯불에 캐러멜색으로 구워진 갈비를

내 밥에 얹어 줬다.

고슬고슬 지어진 따끈한 하얀 밥에

돼지갈비를 척 올려 먹는 맛이란...


감동

그 자체였다.

음식으로 감동받기는 아마 내 기억으로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스무살때의 돼지갈비를 생각하며 오늘 저녁, 스무살의 딸과 함께 돼지갈비를 먹었다.



언니는 말했다. "학교 다니기 힘들지?"

나는 까불듯 나불대며 미주알고주알 학교 이야기를  

푸념처럼, 자랑처럼

떠들어 댔다.

언니는 은은하게 웃어주고 끄덕이며 들어줬다.


그 모습이 퍽이나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밥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언니의 말을 뒤로하고

돌아서는데...


이상하게 언니의 슬픈 눈이 자꾸 생각났다.

언니는 고작 나와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돼지갈비가 맛있었던 딱 그만큼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후에도,

또 돼지갈비가 먹고 싶었다.

그러나 언제든 얘기하라는 언니의 말을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밥을 얻어먹는 일은 없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나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돼지갈비로 대접한다.

그게 최선을 다해 그를 존중해 주는 것 같은 생각을 한다.


지금도 속이 허하거나 우울할 땐 돼지갈비를 먹는다.


그러면

지독한 화장발을 세우던

어른인 척 어른 아니던

공부를 꽤나 잘하는 것처럼 책만 끼고 다녔던  

공순이 언니에게 넙죽 돼지갈비 받아먹던

철없던

스무 살이 보인다.


영자 언니는 잘 지내고 있을까?

언니를 통해 난 그렇게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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