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비된화살 Sep 09. 2023

아들은 아직 미혼인데... 난 그렇게 할머니가 됐다.

[사진 by준비된 화살]

아마도

결혼 후 전세자금 대출을 받기 위해

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그렇게 셔터를 내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4시 30분에 셔터를 내리나요?

온라인으로만 업무를 보는 시대를 살다 보니 모르겠어요^^)


휴게시간이니, 연차니 찾아 쓰기 어려웠던 시절에

없는 시간 쪼개 은행업무를 볼라치면

시간을 잘 맞추어야 했다. 어쩌다 몇 분이라도 늦으면 은행 후문을 찾아 헤매던 그 초조함은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은 좋겠다.

5시 30분이면 땡 하고 문을 닫고 퇴근하잖아?




어쩌다 은행에서 일하는 은숙(가명)씨를 알게 됐다. 이런저런 말끝에 은행은 빨리 문 닫고 퇴근해서 좋겠다고 했더니 절대 안 그렇단다 정작 일의 시작은 출입문을 닫으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입금액을 딱 맞추는 것도, 신입사원이 어쩌다 실수하면 그 금액을 찾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도...

아! 그렇구나 정말 그때 처음 알았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구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늘 참새같이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흥겨운 음악이 흐르는 동화 속 같은 일만 일어날 것 같다.


선생님은 나풀거리는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은은한 핑크색 립스틱을 바르고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행복하게 일하리라


그러나 의외로 어려움이 많다.


아이들 활동 시 생기는 몸과 마음의 상처, 그로 인한 학부모 민원, 끝도 없는 행사준비들...

직업 특성상 여성이 많아 일어나게 되는 미묘한 신경전과 협력하는 지역사회와의 관계등

여러 가지 난제들로 결코 녹록지 않다.




어느 날  공모전(어린이집에서 진행한 교육프로그램을 주최 측에서 심사하여 상을 주는 것-일종의 contest)이 있어 교사들이 연장근로를 신청했다.


교사 50%는 기혼자다.


대부분 자녀가 있기에 연장근로를 하게 되면 교사의 아들 딸 케어가 늘 마음에 걸린다.

야근이 예삿일이던 나의 교사 시절엔 결혼한 선생님의 아이는 늘 교실의 구석에서 또는 업무 보는 책상 아래에서 놀곤 했다.

그렇게 전화기 전선 등이 얽기 설기 꼬여있는 공간을 집 삼아 침대 삼아 말이다.

그 안에는 색연필이며, 색종이며, 책이며, 블록이며

온갖 놀잇감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제 몸뚱이만 들어가도 꽉 차는 공간에서 엄마 다리 사이를 오가며 아이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놀았다. 그 시간 동안 그 아인 엄마 냄새를 맡고, 엄마의 종아리를 만질 수 있어서 행복했을까?

그렇게 교사이면서 엄마인 선생님은 일을 해냈다.




그날도 선생님들이 야근을 하던 참이었다.

저녁때가 지나고 오후 9시가 넘어가는데도

교사들이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일을 해야 할까 싶어 한번 둘러보려고 교실에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의 아이가 교실 저 편 블록놀이방에서 이것저것을 만들며 혼자 놀고 있다.


딱 봐도 만 1세가 넘은 아가처럼 보였다.


밥 먹었냐고 물으니 고 조그맣고 까만 눈동자를

위아래로 또르르 굴리던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는 내 입과 머리카락을 한 5초간 유심히 살피더니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말한다.

"으응~~~ 한머니?"라고 한다.


으응? 머니?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빵 하고 터졌다.

"하하하하 할머니? 내가 할머니 같구나?"

순간 옆에 있던 교사가 아이가 뭐라고 했냐며 동그란 눈을 하고 묻는다.

"으응~ 나보고 머니래요~하하하하"




요즘 노안으로 영 눈이 불편하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안경 없이도 일하는데 전혀 어려움없었다.

오히려 안경을 착용하여 똑똑하고 지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은근히 부럽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젠 모양이나 멋이 아닌 마치 생존처럼

안경 없이는 일하는데 지장이 생겨 버렸다.


사람도 잘 안 보이고 흐릿하며, 핸드폰을 보려면 꼭 안경을 찾느라 손을 이리저리 뻗어댄다.

그러니 손쉽게 사용하기 위해  정수리에 가슴팍에 수시로 꽂고 다닌다.


그것뿐일까?

한낮에 운전을 할 때면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는 

도통 눈이 부셔 반쯤 감기는 탓에 밖을 나가기가 무섭기까지 했다.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왜?


할머니들은 실외에서 양산을 쓰고 다니는지(물론 자외선으로부터의 피부 보호 차원으로 젊은 사람도 많이 사용하긴 한다.)

안경을 머리에 꽂고 다니는지, 핸드폰 글자 크기를 말도 안 되게 크게 해 두는지, 문자의 띄어쓰기 오류가, 문자의 오타가 나는지...




"그래 아가야 생각해 보니

나 할머니가 맞아,

맞는 거 같아"


우리 아들

아직 미혼인데... 

난 그렇게 할머니가 되어 버렸다.


에필로그>

다음날 선생님이 내게 오더니  민망한 듯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친정 엄마랑 시어머니 머리 스타일이 원장님과 비슷해서 우리 아이가 그랬던 거 같다며 어색하게 환한 미소를 지어 줬다.


"선생님 괜찮아요 나 할머니 맞아 아이들의 눈은 정확하거든"


  



  


작가의 이전글 #3 퇴사를 망설이는 그대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