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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Sep 08. 2023

#3 퇴사를 망설이는 그대에게

일이 힘들까 사람이 힘들까 [사진 by준비된 화살]

새벽 3시

숨이 안 쉬어졌다.

남편은 옆에서 쿨쿨거리며

다리를 쩍 벌리고 자는데

돌덩이가 내 가슴부터 배꼽까지 짓누르는

말할 수 없는 조여옴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게 공황장애라는 건가? 많은 연예인들이 커밍아웃하던 그 유행스런 공포




잠이 보약이었던 나였다.

남들은 저녁이라고 하는 시간인 10시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는 아침까지 화장실 한번 안 가고 늘 푹 잘 잤었다. 아무리 끙끙거리며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열이 나도 약 한 봉지 넣고 물 꿀꺽하고 한잔 마시면 언제나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그런 나에게 생뚱맞게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퇴사를 고민하던 때였다.

사실 난 매일 퇴사를 고민한다.

언제가 적기일까?

언제 점프업을 하면 좋을까?

여우같이 조직을 이용했고

새로운 조직으로 이직할 때마다

한 템포 한 템포 야금야금

나를 업그레이드했다.




결혼하고 처음 입사한 유치원에서는

또래 교사들이 많이 있었다.

비슷한 처지의 동료가 있어서일까?

큰아이를 키우는데

많은 위안과 의지가 되었다.

어느 날은 아이가 많이 아팠다.

때마침 휴직을 하고 있던 조리사(사실은 언니라고 불렀다.) 집에 데려다 뒀다.

아이의 열을 해열제로 겨우 끌어내린 시간 동안

조리사언니는 우리 아이의 친구가 되어줬다.




그 후  입사한 어린이집에서는 다행히 원장의 아들과 큰아이가 동갑내기라 대놓고 숟가락을 얻을 수 있었다. 학교 갈 때 같이 가고, 끝나면 데리러 오고를 맘 놓고 했다.

수업 후 수영장을 보내면 어떻겠냐는 원장의

제안에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손뼉 치며 좋아했다.

그렇게 하굣길에 아이는 수영장을 다녀왔다. 물을 안 좋아했던 큰아이의 의견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세 번째 이직을 했다.

국공립어린이집으로  그런데... 계획에 없던 둘째가 생겼다. 2004년 겨울에 태어날 아인데...

참 난감했다. 지금처럼 육아휴직과 출산휴가가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라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고 30일 만에 복직했다. 긴 휴가 기간 동안 비어 두었던 자리와 업무가 너무 낯설고 동료, 선배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따끔거렸다.


서울에 사시는 엄마를 끌어내렸다. 엄마가 아니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평일에는 아이를 돌봐주시고 주말이면 집으로 가셨다.

엄마가 집으로 가신 주말의 어느 날은

남편과 온 집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싸우던지

아니면 합방하던지 늘 둘 중 하나였다.

어쨌든 그 덕분에 다행히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틈만 나면 동화구연대회나 교재교구 경진대회 등에 갔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이를 악 물었다.

나의 극성으로 대상을 타는 등 어린이집의 위상을 올릴 수 있었다. 동시에 나커리어도 차곡차곡 쟁여놨다.


경력도 10년 차가 훌쩍 넘으니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주어졌다.




그다음  입사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는 애당초 중간관리자로 입사를 했기에 많은 후배 교사들을 관리하고 교육, 행정업무를 다루는 일을 맡게 되었다.

담임교사의 일들도 의미가 있고 재미있었지만

관리자의 역할도 꽤나 흥미 있었다.


대학원을 진학했다.

마침 어린이집 복지혜택 중 대학원 교육비의 30%를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 있어 야무지게 이용했고, 직장에 여우같이 이용당했다.

쏙쏙 빼 내 드렸다.

대학원 등록금을 30%나 지원해 주니까

직장은 그럴 자격이 있지




7년 만에 진급을 했다.

원장으로  

원장을 하면 모든 것이 좋을 줄 알았는데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

혹시 내가 ADHD성향이 있는 건 아닐까?

순간순간 진지하게 의심했다.

그만큼 일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떨고 있는 나를 마주했다.


한 어린이집에 오래 있으니 점차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국공립어린이집은  원장도 계약직과 다름없이 업무계약 기간이 있다.)


칼날 같은 날카로운 소리로 마음에

생체기가 생겼다.


사람은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게 맞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 드디어 점프 업할 때가 왔구나

그날 새벽,

그렇게 멎을 것 같던 숨을

겨우 바늘 끝 뾰족한 것으로

찔러 찔끔찔끔 숨을 뱉었다.

그리고는 자그마하게 외쳤다.


나 좀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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