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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Sep 25. 2023

팔씨름 여왕을 뽑습니다.

우리도 이벤트가 필요해(사진 by준비된 화살)

추석 즈음이다.

이렇게 명절이 있는 달이면 선생님들은 두배로 분주해진다.

민속놀이 행사도 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송편이라도 들려 보낼라치

여간 부지런을 떨지 않고서는

해내기가 어렵다.

스티커하나, 포장하나 그저 그래 보여도

나름 어떤 디자인이 좋을지

어떤 포장이 더 예쁠지

고민해가정에 보낸다.


항상 그들의 만족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는 없지만, 빠듯한 예산안에서 가능한 사랑스럽고 정성스럽게 준비한다.




그런 생각을 한다.

선생님들에게도 행복한 명절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

김영란법이 생긴 이후로 학부모들에겐

일절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 그게 사실 서로 편하다.

이유 없이 뭔가를 받는다는 건  거북스럽다.


몇 해 전 일이지만 추석 날 아이 편에 선물을 보내는 학부모가 더러 있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못 받게 되어 있으니 죄송하다며 다시 아이의 가방에 넣었다.


서로 민망하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대단한 것도 아닌데 다시 돌려받으니 그렇고

교사 입장에서는

부모가 감사의 마음을 작게나마 표현한 것인데

마음 상하지 않을까? 해서 신경 쓰여 그렇다.


입학 시즌이 되면 아무것도 보내지 말아 달라고 힘주어 말한다.

정 보내고 싶으면 졸업하는 날 보내시라고...

사실 졸업식날 꽃한송로 감사의 마음을 전달받을 때처럼

가슴이 뭉클할 때가 없다.

서로 교사와 학부모로서의 관계가 정리되는 날

아무런 사심 없이 감사의 마을을 전하는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말이다.




추석 행사를 치른 후 우리 선생님들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해 줄까?

고민했다.

늘 이벤트에 진심인 옆집 원장님에게 슬쩍 물었다.


교직원 팔씨름 여왕 선발대회


신선했다.

늘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에 의한 팔씨름 대회는 해봤지만

선생님들의 팔씨름은 생각지도 못했다.

카드뉴스를 만들었다.


1등 5만 원 상당의 상품 및 원장 금일봉

2등 5만 원 상당의 상품

3등 여러 가지 상품 중 먼저 고를 수 있는 권리 획득


대단한 상품이나 상금은 아니지만

선생님들은 아침부터 목소리가 사뭇 들떠 있었다.

어떤 은 벌써 끼리끼리 팔씨름 연습을 해봤단다.


계획에 없던 대진표를  박스로 급 조달받아 만들고 과열 방지를 위한 룰도 만들었다.


이 대회를 통해 자체 과열되어 몸이 상 할 경우

산재처리 금지! 병가 신청 금지! 란다.

원장 결재 없이 그들이 대회의 법을 정하고

조금의 선처도 없을 예정이란다.

비장하다.


다양한 선물도 준비됐다.

햄세트부터 스탠드까지,

핸드폰 충전기부터 원장 금일봉까지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짧은 타이트스커트를 입고 있던 나는

누가 보든 말든 로비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이미 그들은 누가 누웠던 앉았던 관심이 없다.

1등을 향한 투지만 있을 뿐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순수하고 이렇게  즐길 줄 아는 사람들

본인들도 챙김 받고 싶은데 늘 챙기기에 바쁜 사람들


난 그들을 이렇게 부른다.

선생님




이벤트에 집중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10년 전, 20년 전의 개구쟁이들이

꼼지락꼼지락 장난칠 궁리를 하는

번득이는 눈망울을 보았다.



1등은 이제 갓 입사한 새내기 보조교사가 획득했다.

"원장님 퇴근하겠습니다!"

 그녀의 인사 소리가

어린이집 앞 상수리나무 꼭대기에 걸렸다.


난 금일봉으로 지갑이 털렸지만

계속 웃음이 나왔다.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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