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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Aug 04. 2023

호두나무와 매미

매미가 한 철이듯... 이 또한 지나가리라

  뜨거운 여름만 되면 호두나무에 매달린 그 녀석 때문에 이웃 주민의 원성을 사곤 했다.

호두나무 우습게 보면 안 됨을 깨달았다. 임계점이 지나면 2층 높이로 훌쩍 자란다.


[작은 호두나무 우습게 보지 않기 시작]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살았던 이 주택에는 고작해야 120cm 정도 되는 호두나무가 있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대문 옆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이 별로 신통치 않아 현관문 으로 자리를 옮겨 심었었다.


3년 차부터인가?

신통하게 쑥쑥 자라기 시작하더니. 나의 키를 넘어 남편의 키를 따라잡고

그 이듬해에는 2층 창문 높이까지 자랐다.


한 해는 통실통실한 호두가 200개도 넘게 달리고, 그다음 해에는 300개도 넘게 달렸다.

 '호두가 익으면 그냥 먹으면 되나?' 하고 까보면 썩어 있거나, 곰팡이가 슬어서 도통 먹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지나서 알았다. 호두는 적절한 온도에서 잘 말려야 비로소 먹을 수 있다는 걸...)


어느 순간 호두나무 가지의 잎들이 크게 자라 거실 창문을 가려 그나마 들어오던 해를 막아 버렸다.

안 그래도 해가 잘 들지 않는 거실 창문을 호두나무 가지가 떡하니 막아 버리다니 습기도 많고 영 못마땅했다.  


[호두나무와 매미 하나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느 해부턴가... 호두나무에 그 녀석만 출몰하면 우리 집은 이웃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호두나무 정말 크네요라며 돌려 말하는 사람은 그래도 양반이다.

어떤 사람은 시끄러워 살 수가 없다며 타박을 했다.

뒷집 할아버지는 막걸리를 나무 밑동에 뿌리면 나무가 빨리 죽는다는 소릴 들었다며 총총히 사라졌다.


그렇게 호두나무에 매달린 매미는 장마가 끝난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정말 힘차게도 울어 댔다.

사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소리 지르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현관 바로 옆에 호두나무를 심었으므로 우리 집 거실은 한여름이면 우렁찬 매미 우는 소리에 거의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에어컨 트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매미소리로 인해 창문을 굳게 닫고, 에어컨을 틀 정도니...

이웃 주민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저 호두나무만 없다면... 이렇게 시끄러운 매미 소리는 물론 이웃에게 싫은 소리 안 들어도 될 텐데...'


그렇게 더운 여름만 되면 호두나무와 매미의 합작품으로 인해 이웃의 눈치를 보곤 했다.

  

어느새 그렇게 두 해가 지났다.  


매미도 한 철이다(출처 다음블로그 무불통지 지존무상)

[호두나무의 최후]


일찍 퇴근한 남편에게 카톡이 날아왔다.

"여보 여보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 집에 와보니 호두나무가 뚝 부러져 쓰러져 있어"하며 누워있는 호두나무 사진을 보내왔다.


정말 신기하게 지름 20~25센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호두나무 밑동이 꺾여 대문 쪽으로 푹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남편은 신기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한지 사뭇 흥분한 모습이었다.

나 또한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부터 신기하게도 빽빽 울어대던 매미 소리는 30M쯤 떨어진 이발소집 옆 오동나무에서 아련하게 들려왔다.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호두나무는 어떻게 쓰러졌을까?


혹시... 뒷집 할아버지가 슬쩍 막걸리를 들어부어 두셨던 건 아닐까?


[매미도 우리의 답답함도 다 지나간다]


장마 후 본격적인 매미 철이 다가온 8월이다.


매미는 6~7년 정도 땅속에서 애벌레로 지내다가 여름이 되면 슬쩍 땅을 뚫고 나와 껍질을 벗는 다는데...

그리고는 멋지게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목청껏 울어댄다.


그러나 우린 매미 소리가 곧 사라질 것을 알고 있다.


지금,

풀리지 않는 답답한 일들이 있어 막막한가?

그렇다면 곧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길...


어느덧 뜨겁게 울어대던 매미도 '안녕 잘 가'라고 얘기할 날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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