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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Mar 02. 2024

여자 머리는 하지 않아요

남자 커트만 전문으로 해요

같이 근무하던 보건교사 수희는 결국 그만두고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보건교사 급여로는 아이 둘 키우는 돌싱녀로 살기에 녹록지 않았으리라

워낙 손끝이 야무지고 바지런한 그녀는 일 년을 밤낮으로 공부하고는 곧 미용실을 냈다.




자그마한 아파트 단지 내 상가 1층이었는데, 투명 통창에 흰 선팅으로 3분의 2를 가려서 밖에서 안이 잘 안 보이는 것 빼고는 위치나 미용실의 규모가 맘에 들었다.

건너 건너 아는 미용실 원장님의 얘기로 간혹 남자 고객의 도를 넘어 성추행에 가까운 스킨십으로 가슴이 덜컥 내려 않은 적이 몇 번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 생긴 의심병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핸드폰, CCTV가 상시 돌아가고 있는 시대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던 2000년대 막 접어들었을 때는 간혹 그런 일이 있었다며 결국 (그 일 때문만은 아니지만) 미용실을 접었다.




길고 푹신푹신한 3인용 소파를 가운데 두고 종이컵과 믹스커피, 아메리카노 커피가 준비되어 있는 동네 미용실이지만 패기와 열정으로 시작했던 그녀는 2년을 열심히 하더니 확장 이전을 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제 저 여기서는 여자머리 하지 않을 거예요

회전율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여자들의 그 예민함 때문에 맘고생이 너무 심했다는 것이다.


그랬구나 맞아 그럴 수도 있어 여자들의 미적 감각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지...


맞장구치기는 했지만 내심  운영은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남자커트 전문점

그래도 한두 해는 곧 잘 되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그녀 말마따나 회전율도 좋고 남성커트 전문이다 보니 비교적 응대하기에 까다롭지 않다고도 했다. 다행히 난 지인 찬스로 여성이지만 예외적용을 하여 한 달에 한 번은 들려 머리를 맡길 수 있었다.




오늘은 그녀의 한숨이 길고 깊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여자도 해야 할 거 같아요


남성만 하다 보니 여자 머리하는 스킬도 줄어들고 어느 부분은 까먹어 자신이 없어졌다며 확실히 응대 등이 어렵긴 하지만 운영에 도움이 되는 건 맞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파마머리 잘한다는 소문이 있는 미용실에 일주일에 한 번 스태프로 위장취업(?)했었다며 그동안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런데 그곳에 가보니 확실히 잘 되는 곳은 다르더란다. 원장 미용사가 엄청 열심히 하고, 출퇴근 시간도 따박따박 지키며 아무리 일찍 끝나도 퇴근을 하지 않는 기본을 지킨다고 한다. 

그리고는 머리 케어를 정말 정성껏 해주는데 정신이 바짝 나더란다. 아니 분명히 알고 있는 스킬이었는데 왜 그동안 하지 않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나태해진 스스로를 다그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저도 결심했어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최선을 다 할라고요




출생률 저조, 경제 불황

몇 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듣는 말이다.


모두가 어려운 시대,

그럼 모두 망해야 정상인데 이 와중에도 의리(?) 없이 잘 되는 곳은 꾸준히 발견된다. 

이유가 뭘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인의 열심을 빼놓을 수가 없다. 온갖 허드레일부터 중요한 일까지 주인의 살신성인이 스며들어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여자머리는 하지 않겠다던 그녀의 호기로움은 지속적인 미용 공부를 통해 변덕스럽게 바뀔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호황을 누리는 맛집이 존재하고,

끼니때가 되면 그곳을 찾아 웨이팅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린 사회 현상이라는 핑계를 대며

그걸 가끔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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