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초능력자가 되자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2 두 번째 밤

by 샘비

#2 두 번째 밤_우리 초능력자가 되자


“아빠, 채식주의자가 뭐예요?”

“이 책 말이지? 종류가 다양해서 아빠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보통은 고기나 생선 같은 음식을 먹지 않고 채소나 과일 같은 식물성 음식만 먹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을 말해. 달걀이나 우유까지 안 먹는 사람도 있어.”


“그렇구나. 그런데 그 사람들은 왜 그래요? 고기를 먹는 게 나쁜 거예요? 저는 고기가 제일 맛있는데 …”

“그건 아니야.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듯이 먹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 거야. 그게 이상한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


우리는 ‘사람으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으로서의 권리와 책임, 타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배운다. 또한 함께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나아가 이러저러한 불편, 손해,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기꺼이 도덕적으로 행동한다. 윤리적인 생각과 행동은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론 불가피함을 핑계 삼아 자신의 윤리 감각을 마비시키고서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침묵하곤 한다. 우리의 시선 너머에서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위안하며 자신의 무기력을 승인한다.


나는 윤리나 도덕에 억눌린 삶이 양심의 무게를 놓아 버린 자유보다 더 옳다고 믿는다. 적어도 그렇게 가르치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삶의 책임은 내가 지고 싶을 뿐이다. 나는 책임을 다하는 삶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윤리의 억압이 자유를 잠식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이 다짐을 지킬 수 있기를 희망한다. 순간순간 지난 시간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지금부터라도’라는 다짐 뒤로 숨어도 되는 것일까.


“얼마 전에 마트에서 수족관 어항에 갇힌 거북이 한 마리를 본 적이 있어요. 그 거북이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유리로 된 벽을 부수려 허우적거렸어요.”

“그래, 아마도 꿈에서 깨어나려고 허우적거렸는지도 모르지. 거북이에게는 깨어있는 악몽이었을 거야. 모두가 생명을 생명으로 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모든 생명은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니까.”


인간의 윤리성을 판단하는 최소한의 잣대는 공감이다. 모든 생명체의 고통을 기꺼이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도덕의 바탕이며, 사회적 존재가 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인간답다’라는 말의 의미가 그런 것이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는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무감각을 ‘잘 알지 못했다’, ‘그렇게 될지 몰랐다’라는 말로 얼버무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무지보다 큰 잘못은 없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존재를 내 몸과 같이 여기는 유기체적 상상력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초능력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초능력은 사용하는 순간에만 초능력일 수 있으니까.


“아들, 우리 초능력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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