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샘비 Mar 08. 2023

기억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

대화의 즐거움_#35

#35 기억 남겨진 사람들의 몫


"율아, 여기 어디인 줄 알아?"

"그럼요. 촉석루예요."


"촉석루는 뭐가 유명해?"

"임진왜란 때 논개라는 분이 일본 장군을 데리고 물에 빠져 돌아가신 일이요."


"맞아. 게야무라 로구스케. 일본 장군 말이야."

"게야, 이름 려워요."


"아빠도 겨우 외웠어. 이번 기회에 외워두려고. 어릴 때 글로만 읽었는데, 여기 서서 보니까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죽는다는 게 참 무서웠을 텐데."


(...)


"아빠, 책에서 읽었는데요, 어떤 아저씨가 죽는 게 참 무섭다고 했어요. 죽는 건 정말 무서운 거예요? 아빠도 죽는 게 무서워요?"

"그럼. 아빠도 많이 무섭지. 율이는 어때?"


"저는 잘 모르니까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무서워졌어요."

"왜?"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요. 아빠도 그러시고."

"그러네. 그렇겠다. 미안, 아빠가 잘못 말했다."


"뭐가요?"

"무섭지 않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왜요?"

"한 번 생각하고 나면 그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우니까."


(...)


"아빠는 뭐가 제일 무서워요?"

"그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거. 그리고 그들과의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거."


"그러면 아빠는 죽어서 딱 한 가지만 기억할 수 있다면 뭘 기억하고 싶으세요?"

"음... 없어."


"왜요? 기억을 잃어버리는 게 무섭다고 하셨잖아요?"

"그래도 기억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니까."


"우리가 여기에 서서 역사를 기억하는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말이 기분을 만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